옛날부터 제일 재미있는 것은 싸움 구경이라고 했다. 그래서 싸움이 벌어지면 말리기 보다는 지켜보기 위해 구경꾼들이 몰리게 마련이다. 더구나 싸움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구경꾼은 더 많이 모이는 법이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차명재산 상속을 둘러싸고 지금 삼성가는 유산 분할 소송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전 제일비료 회장인 이맹희씨와 이숙희씨는 이병철 창업주의 장남과 차녀로, 삼남인 이건희 회장에게는 큰 형과 누나다. 이들은 지난 2월 이 회장을 상대로 선대 회장이 유산으로 남긴 주식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냈다. 이맹희씨가 7100억원대, 이숙희씨는 1900억원대다.
이건희 회장은 아직까지 한푼도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회장은 이맹희씨가 30년 전에 본인을 군대에 고소하고, 아버지를 형무소에 넣겠다고 하면서 박정희 대통령한테 고발을 했고, 집에서 퇴출당한 사람이라고 공격했다. 그러면서 “이맹희씨는 감히 나보고 ‘건희’ ‘건희’ 할 상대가 아니다”라면서 공세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누나인 이숙희씨에 대한 불편한 감정도 공식적으로 토로한 상태다. 이 회장 입에서 형 맹희씨를 비난하는 험담이 원색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맹희씨 역시 막말로 쏘아붙이고 있다. 이렇듯이 삼성 재벌가의 유산 다툼은 진흙탕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번 소송을 놓고 두 사람이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이는 것은 이해가 간다. 맹희씨가 요구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주식의 가치는 7000억원대에 이를 뿐 아니라, 이 회장이 패소할 경우 외아들 이재용씨에게 삼성의 경영권을 물려주는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된다. 이 때문에 나라 안팎으로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삼성가의 분쟁을 지켜보는 미국도 관심이 크다. 뉴욕 타임즈와 파이낸셜 타임즈 등 주요 외신들은 유산상속 문제를 둘러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삼성가의 공방에 대해 ‘한국식 막장 연속극(Korean soap opera)’이라며 폄하했다. 또, 이건희 회장이 형 맹희씨에게 한국의 유교사회 관습에서 제사 의무를 떠앉은 장자의 역할에 대한 비난은 최고조 수위라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족의 불화가 일일 드라마로 번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뉴욕 타임즈는 삼성가의 가족사를 북한의 김정일 일가에 비유하기도 했다. 북한의 권력 승계자 김정은처럼 이병철 선대 회장의 셋째 아들인 이건희 회장이 불행해진 장남을 밀어내고 올라선 인물이라는 것. 이어 한국의 재벌가에서는 후계와 유산 상속 문제로 싸움이 자주 일어난다며 현대, 금호, 두산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고 꼬집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돈을 놓고는 가족간에도 가까워지기 어렵다는 말이 맞다.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고 개혁을 주창했던 이 회장이 돈 앞에서는 어린애가 됐다. 이것이 세계 톱 클래스 맞느냐”고 비아냥거렸다. 집안 싸움에 이처럼 국제적으로 관심을 받는 것을 보면 삼성이 세계적 기업임에는 틀림없다.
아주 오래전이다. 영국 히드로 공항에 내렸을 때다. 공항내 있던 그 많던 카트에는 삼성 로고가 일일이 붙어있었다. 독일의 프랑크프루트 공항 입구에도 삼성 광고가 대문짝만하게 서 있었다. 공항가는 길이 아니라 삼성으로 가는 길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가는 곳마다 마찬가지였다. 삼성은 이미 한국의 기업을 넘어서 세계의 기업이 되었고, 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에게는 자긍심을 심어준 기업이다. 한 때 너무 잘나가서 얄미운 기업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삼성은 이제 단순 기업이 아니다. 한국하면 삼성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준 만큼 우리 국민들이 고마워해야 할 기업이기도 하다. 특히 외국에 사는 우리에게는 자긍심을 심어준 기업이다.
삼성을 이 정도의 위치까지 끌어올린 이건희 회장은 참 대단한 사람이다. 자신이 피땀흘려 일구어 놓은 재산을 지금에 와서, 그것도 형제들이 빼앗아 가려고 하니 이 회장의 입장에서 본다면 분통이 터질 만도 하다. 하지만 이 회장이 만들어온 삼성의 이미지가 세계 언론의 비아냥거리로 몰락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더 분통터진다. 이렇게 볼썽사나운 꼴을 계속 연출한다면 누가 소송에 이긴들 결국엔 양쪽 모두 패자가 될 것임은 자명하다. 또한 삼성의 도전을 위협으로 간주하는 글로벌 경쟁사들에게 총수까지 나선 형제간 분쟁은 삼성의 이미지를 깎아내릴 아주 좋은 소재이다.
삼성은 2010년 기준으로 자산총액 230조9000여억원, 매출액 254조5000여억원을 기록한 세계적인 기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삼성가 형제간의 분쟁은 개인 문제에서 시시비비를 논할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싸움이 길어질수록 구경꾼의 시선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엉뚱한 결과에 도달될 수도 있다. 더 늦기 전에 이 회장은 사소한 행동 모두가 ‘삼성’ 범주에 묶여 인식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주길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이 회장의 자제가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이 회장이 지금까지 이룩한 삼성 제국은 한국 기업사의 신화이다. 그 신화가 막장 드라마로 얼룩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