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섭 목사 제공.
임동섭 목사 제공.

지난 11월 12일 밤, 뉴멕시코 로스 알라모스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지역은 고지대의 조용한 도시이지만, 오로라와는 거리가 먼 곳이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안이 차분해질 무렵, 사위가 갑자기 밖을 향해 나가며 “오늘 밤 오로라를 볼 수 있대요!”라고 말했습니다.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오로라는 북쪽 끝, 북위 60도 이상의 지역에서 관측되는 자연 현상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핀란드, 알래스카, 캐나다 북부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특별한 빛. 그 흔한 여행 광고 속에서나 등장하는 신비로운 그림의 주인공. 그런 오로라를 뉴멕시코에서 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위는 이미 밖으로 나가 있었습니다. 아내가 뒤따라 나갔고, 딸도 재빨리 카메라를 챙겼습니다. 저 역시 호기심과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한 방향으로 고개를 들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보니 동쪽 끝이 옅게 붉었습니다. 노을과도 비슷했지만 그보다 훨씬 연했습니다. 순간 실망감이 스쳤습니다. 사진이나 영상에서 보던 웅장한 커튼 모양의 오로라가 아니라, 금방 사라질 것 같은 희미한 빛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딸이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며 말했습니다. 딸은 평소에는 거의 쓰지 않던 3초 노출을 설정했습니다. 핸드폰 속에는 전혀 다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던 희미한 붉은 기운은 사진 속에서 선명한 붉은색 장막으로 나타났습니다. 나중에 은하수도 뚜렷하게 찍을 수 있었습니다. 육안으로는 알아보기 어려웠던 별의 흐름과 색깔이 카메라에는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순간 묘한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현실에서는 희미했던 빛이 기계의 도움을 받자 완전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집 안으로 돌아와 SNS를 살펴보니, 상황은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페이스 북’에는 이미 수많은 오로라 사진이 올라오고 있었고, 미국과 캐나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같은 현상을 목격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과학계에서는 이날부터 사흘간 북미 대륙 대부분의 지역에서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다는 예보를 내놓고 있었습니다. “캐나다와 미국 21개 주에서 오로라 관측 가능”이라는 포스터도 공유되고 있었습니다. 뉴멕시코도 그 목록 안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정말 자연이 우리에게 잠시 선물한 특별한 장면이었습니다.

오로라는 태양에서 날아온 고에너지 입자들이 지구의 대기와 충돌하면서 빛을 내는 현상입니다. 지구는 거대한 자석과 같습니다. 자기장은 북극과 남극으로 향하고, 태양 입자들이 이 자기장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오로라는 대개 극지방에서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태양에서 매우 큰 폭발, 즉 ‘태양 플레어’가 일어났습니다. 이 폭발은 태양의 표면에서 엄청난 양의 에너지와 입자가 우주로 방출되는 현상입니다. 특별히 강한 폭발이 있을 경우 지구 자기장까지 흔들어 놓습니다. 그 결과 평소보다 훨씬 낮은 위도에서도 오로라가 관측될 수 있습니다. 이를 ‘지자기 폭풍’이라고 부릅니다. 이번 오로라가 바로 그런 현상에 의해 나타난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규모의 태양 폭풍을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드문 사건으로 분류합니다.

대부분의 오로라는 녹색입니다. 녹색은 100km 안팎의 비교적 낮은 고도에서 산소가 태양 입자와 충돌할 때 나오는 빛입니다. 그러나 더 높은 지점, 200~300km 이상의 상층 대기에서 산소가 반응하면 붉은 빛이 나타납니다. 특히 태양 폭풍이 강할수록 더 높은 대기층까지 입자가 도달하기 때문에 붉은 오로라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문제는 붉은 오로라가 워낙 희미하다는 점입니다. 밤눈은 빨간색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붉은 오로라를 보고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칩니다.

그러나 카메라는 다릅니다. 길게 노출을 주면 하늘에 남아 있는 미세한 빛까지 모두 모아 기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날 본 하늘은 선명한 붉은색이 아니었지만 핸드폰 화면은 선명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종종 그 밤을 떠올립니다. 특별한 장비가 없었다면 그저 ‘조금 붉은 하늘’로만 기억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카메라가 보여 준 선명한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남겼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고, 우리 인생의 많은 순간도 그렇습니다.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는 빛이 있습니다. 빛이 약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충분히 오래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깊이 바라본다면 마치 긴 노출로 찍은 사진처럼 우리 삶의 어느 부분에서도 선명한 빛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날의 오로라는 자연의 신비로움만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조용히 일깨워 주었습니다. 희미한 빛을 그냥 지나치지 말라는, 잠시 멈춰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단순하지만 오래 남는 메시지였습니다. 뉴멕시코의 밤하늘에서 우연히 만난 붉은 오로라는 삶이 때때로 건네는 ‘미세한 신호’가 얼마나 깊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언젠가 또다시 자연이 이런 선물을 내어 준다면 그때는 좀 더 마음을 비우고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용하고 담담했지만 오랫동안 남을 특별한 밤이었습니다.

임동섭 에콰도르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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