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의 삶을 소재로 한 <구암 허준>은 16세기 중후반에서 17세기 초반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는 머슴-사용자 관계가 등장한다.
의원 유의태의 집에 근무하는 일꾼들 중에는 명확하게 머슴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드라마 속의 허준(김주혁 분)도 한때는 이 집의 머슴이었고, 허준을 박대했던 선배 일꾼들도 머슴이다. 예진 아씨(박진희 분)도 엄밀히 말하면 머슴이다. 노비도 아니면서 그 집에서 고정적으로 일하기 때문에 예진도 머슴의 범주에 포함된다. 
물론 허준이 유의태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다는 것은 순전히 허구다. 또 유의태는 허준보다 훨씬 뒤에 태어난 사람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이어지는 이야기에 주목해보자.
머슴과 노비는 외형상으로는 비슷했다. 사용자를 위해서 일하고 대가를 획득한다는 점은 똑같았다. 하지만, 둘은 엄연히 다른 존재였다. 특히 신분적 예속성이란 측면에서 그랬다. 노비는 법률에 의해 주인의 종으로 살도록 되어 있었고, 머슴은 그렇지 않았다. 법적으로 사용자의 물건으로 취급되는 사람은 노비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머슴이었던 것이다.

   머슴은 사용자와의 계약에 기초해서 일을 했다. 계약은 원칙상 양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으므로, 원칙상 양인만이 머슴이 될 수 있었다.
머슴은 법적 자유인인 양인이었기 때문에, 머슴과 사용자의 관계는 언제든지 끝날 수 있었다. <구암 허준> 속의 일꾼들은 본인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유의태의 집을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노비는 원칙상 면천(신분해방)을 받지 않으면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었지만, 머슴은 계약기간만 끝나면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노비제도가 크게 동요했던 18세기에도 노비는 전체 인구에서 30% 정도였다. 그 이전에는 보통 50%는 됐다. 고려시대는 이보다 훨씬 더 많았고, 고려시대 이전에는 고려시대보다 훨씬 더 많았다. 노비가 아닌 양인들은 관료, 상인, 기술자, 자작농, 소작농 혹은 머슴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학계의 연구 결과를 종합할 때, 한국에서 머슴의 숫자가 노비의 숫자를 추월한 시기는 18세기 정도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17세기부터 두드러진 경제적 변화가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17세기에 나타난 현상 가운데서 대표적인 것은, 이전 시기에 비해 상업과 도시가 크게 발달했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농촌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던 노비들을 도시로 유혹하고 흡수하는 기능을 했다. 봉건적 수탈에 시달려온 노비들은 도시라는 자유 공간이 확대되자 그곳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17세기부터는 도시로 도주한 노비들이 양인 행세를 하면서 머슴살이를 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한편, 이런 이유 때문에 농촌에 일손 공백이 생기자, A 농촌에서 도주한 노비들이 B 농촌에 가서 양인 행세를 하면서 머슴살이를 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이것은 머슴의 숫자를 전반적으로 증가시키는 요인이 됐다.  
이 같은 노비의 대대적 이탈은 사용자와의 마찰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사용자들은 도망간 노비를 잡고자 관청에 고발장을 제출하거나 아니면 개인적으로 추노꾼을 고용했다.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한 KBS <추노>는 이런 상황을 반영한 드라마다.

   이런 갈등 구조 속에서 일부 노비들은 기존 일터에서 이탈했지만, 일부 노비들은 사용자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대항했다. 이러다 보니, 사용자 입장에서는 노비 관리비용이 증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망간 노비를 잡기 위해 추노꾼을 고용하는 데도 돈이 들었고, 남아 있는 노비들의 저항을 억압하는 데도 돈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사용자들은 노비를 고용하는 것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머슴을 고용하는 쪽으로 눈을 돌리는 사용자들이 많았다. 머슴은 기간제로 고용하고 때가 되면 해고할 수 있으며 언제든지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머슴-사용자 관계는 당시 관점에서 보면 '노사분규'가 비교적 적은 쪽이었다. 
이처럼 노비의 도망 내지는 저항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사용자의 노비 기피 현상이 증가하면서, 머슴 숫자가 노비 숫자를 능가하는 역사적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상태에서 19세기에 서양의 자유민권 사상이 들어오고 노비제도의 반인권적 측면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면서 노비제도가 공식적으로 해체된 것이다. 따라서 머슴의 증가는 노비제도 해체의 최대 요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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