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깊은 아들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조의 가정환경을 살펴보면,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에 대한 감정이 복잡미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조의 집안에서 아버지 사도세자는 소위 '왕따'였다. 사도세자는 아들 정조와의 관계를 제외한 나머지 관계에서 심한 갈등을 겪었다. 특히 정조의 할아버지인 영조가 사도세자를 가장 못마땅해했다.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생모인 이영빈(영빈 이씨)은 출산 100일 뒤부터 사도세자와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아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또 혜경궁은 사도세자의 아내로 살기보다는 홍봉한의 딸로 살기를 더 좋아했다. 그는 남편의 개혁 의지를 뒷받침하기는커녕 도리어 이것을 방해했다. 남편에 관한 정보를 남편과 적대관계인 친정집에 제공할 정도였다. 회고록인 <한중록>에서도 남편을 미치광이로 묘사하고 친정집을 열렬히 옹호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혜경궁에게는 남편과의 사랑보다 친정의 부귀영화가 훨씬 더 중요했다.
혜경궁은 자기 가문을 포함한 외척세력의 힘을 꺾으려는 사도세자가 싫었다. 그래서 그는 남편을 죽이는 일에도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 친정인 홍씨 가문이 남편을 죽이는 데 앞장섰을 때 그도 암묵적으로 지원을 했던 것이다.

   반면 정조는 정치적으로 고립되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고 아버지의 정치적 꿈을 실현시키는 것이 생애 내내 일관되게 추구한 목표였다.
즉위식 때 아버지를 죽인 정치세력 앞에서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선포한 사실, 기득권층의 따가운 시선을 무릅쓰고 아버지의 위상을 높여 나간 사실, 정치개혁의 거점이 될 수원 화성에 아버지의 무덤을 이장한 사실 등은 정조의 마음속에서 아버지가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 잘 보여준다. 
이런 점들을 보면, 아버지를 고립시키는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에 대해 정조가 어떤 마음을 품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그들에 대해서도 효심을 품었겠지만, 불편한 감정이 많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정조의 마음은 복잡미묘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어머니에 대해 사랑을 느끼기도 하고 섭섭함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창경궁에는 좀 특이한 주거 공간이 있었다. 통명전 뒤편 언덕에 있었던 자경전이 바로 그것이다. 이곳은 사도세자가 죽은 지 15년 뒤이자 정조가 왕이 된 지 1년 뒤인 1777년에 정조가 어머니를 위해 지은 건물이다. 자경전은 다른 주거 공간들과 달리 언덕 위에 조성됐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궁궐 밖을 쉽게 조망할 수 있다. 자경전 터에서 약 500미터 떨어진 곳에는 예전에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이 있었다. 
정조는 어머니가 자경전 방문을 열고서 나올 때마다 경모궁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언덕 위에다 자경전을 지었던 것이다. 그것이 계기가 돼 어머니가 마음속으로나마 아버지에게 용서를 빌고 아버지와 화해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정조는 죽기 5년 전인 1795년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어머니의 환갑잔치(진찬례)를 열었다. 한양에서 해도 될 환갑 잔치를 화성까지 가서 한 것은 이곳에 아버지의 무덤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아버지가 있는 수원 화성에서 어머니의 진찬례를 엶으로써 두 사람의 화해를 상징적으로나마 연출하고 싶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하필이면 화성행궁에서 환갑잔치를 열어주는 아들의 ‘얄미운 효심’에 대해 혜경궁 본인은 반발을 품었던 것 같다. 환갑잔치가 있었던 그해부터 혜경궁이 <한중록>을 의욕적으로 집필한 사실에서 그 점이 잘 드러난다.

   <한중록>이 전달하는 메시지 중 하나는 '사도세자는 미치광이라서 죽을 수밖에 없었고 홍씨 가문은 이 죽음에 책임이 없다'는 것이었다. 자신과 남편의 화해를 은근히 촉구하는 정조에 맞서, 혜경궁은 <한중록>을 통해 '나와 우리 집안은 네 아버지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는 메시지로 대응한 것이다.
정조의 어머니에 대한 감정은 좀 복잡미묘했다. 어머니에 대한 마음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사죄나 아버지와의 화해를 촉구하는 심리가 담겨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어머니에 대한 효심은 약간은 '불순물'이 섞인 효심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혜경궁과 정조는 겉으로는 절친한 모자관계였지만, 속으로는 긴장감이 감도는 모자관계였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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