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기념하는 임시정부(이하 임정) 수립일이다.
임정의 역사는 상당부분은 백범 김구의 역사다. 일제의 방해와 재정적 곤란을 참아내지 못했다면, 임정은 8?15 해방 이전에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임정을 끝까지 지켜낸 주역은 임정 문지기(경무국장)로 시작해서 임정 주석까지 오른 김구였다.
김구의 회고록인 <백범일지>에 따르면, 1935년 10월 당시에 임정은 국무위원 7명 중에서 2명만 남은 상태라서 국무회의조차 열 수 없었다. 이때 김구는 중국 가흥(자싱)의 남호라는 호수에 놀잇배를 띄워놓고 거기서 선상(船上)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국무위원 세 명이 추가돼 임정 국무회의는 가까스로 되살아났다.
이렇게 김구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임정의 명맥을 유지하고, 이것을 기반으로 해방 직후에 남북분단을 반대하고 남북협상을 추진했다.
그런데 그런 김구의 목숨을 건지고 그가 훗날 임정으로 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덕수궁 함녕전의 전화기였다. 따라서 함녕전의 전화기가 아니었다면 임정이 그렇게 오래 유지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우연히 만난 일본인을 죽인 스물한 살 김구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은 조선에 군대를 파견했다. 일본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청일전쟁을 벌여, 조선에서 청나라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조선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불안을 느낀 고종 임금은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려 했다. 그러자 일본은 1895년에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고종을 압박했다.

   황해도 해주 출신인 김구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격분해서, 황해도 안악군에서 우연히 만난 쓰치다 조스케라는 일본인을 죽였다. 이때가 1896년이었다. 일본인을 죽인 김구는 '국모의 원수를 갚을 목적으로 거사를 벌였다'는 대자보를 붙인 뒤 성명과 주소까지 적어 놓고 유유히 현장을 떠났다. 그는 3개월 뒤 체포됐고, 배를 타고 인천으로 끌려가 인천감옥에 투옥되어 재판을 받았고, 사형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괴로울 때 술이 아닌 책을 '마시는' 것은 김구의 행동패턴이었다. 사형을 기다리는 그는 자아계발에 뛰어들었다. 우선, 김구는 평소에 읽지 않던 서양학 서적을 열심히 탐독했다. 또 동료 죄수들을 돕는 일도 열심히 했다. 그들에게 글도 가르치고 소송서류도 대필해주었다. <황성신문>에서 "김창수(김구의 두 번째 이름)가 인천감옥에 들어온 다음부터는 감옥이 아니라 학교(가 됐다)"라고 보도할 정도였다.
그렇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던 22살의 김구는 1897년 7월 결국 사형집행일을 맞이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기적이 발생했다. 사형집행이 정지된 것이다.

    사형이 집행되기 좀 전에, 한양 덕수궁에서는 고종의 비서가 사형수 명단을 훑어봤다. 그는 그 명단에서 김구란 이름에 주목했다. 김구의 행위 동기(범행 동기)가 특이했기 때문이다. '국모의 복수를 위해 일본인을 죽였다'는 행위 동기에 그의 시선이 집중됐다.
비서는 고종에게 급히 보고했고, 고종은 긴급 어전회의를 열어 사형집행정지를 결정했다. 그러나 예전 같이 파발을 통해 왕명을 전달했다면, 고종의 특명은 김구가 죽은 뒤에나 인천감옥에 전달됐을 것이다. 하지만 <백범일지>에 따르면, 다행히도 사형집행 3일 전에 서울-인천 전화선이 개통됐다. 그래서 고종의 집무실인 덕수궁 함녕전에 설치된 전화기가 인천감옥의 전화기와 연결될 수 있었다. 그런 기적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김구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것이고, 그랬다면 임정이 해방의 순간까지 그렇게 끈기 있게 버티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형집행정지는 말 그대로 정지였지, 사면은 아니었다. 그래서 김구는 그 뒤에도 계속해서 사형을 기다려야 했다. 김구의 사면을 성사시키기 위한 운동이 있었지만, 일본 측의 훼방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김구는 간수와 죄수들에게 술과 고기를 푸짐하게 대접한 뒤, 모두 잠든 틈을 타서 감옥 마룻바닥을 뚫고 탈옥했다. 그 뒤 김구는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가담해, 은근과 끈기로 임정을 지켜내다가 8?15 해방의 순간을 맞이했지만, 결국 덕수궁 근처에 있는 경교장에서 미군 첩보요원 안두희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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