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鐵)의 여인’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가 87세 일기로 8일 뇌졸중으로 서거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대처 수상은 단순히 이 나라를 통치한 것이 아니라 구원했다”며 그를 추모했고, 보수, 자유, 진보 이념을 넘어 세계 각계각층에서 그의 서거를 애도하는 이유는 업적과 함께 그가 남긴 교훈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강한 의지를 가진 여인”이라는 의미의 ‘철의 여인’은 여성 국가 원수에게 종종 붙이는 별명이다. 마가렛 대처 영국 총리를 비롯해, 인디라 간디 인도 총리, 골다 메이어 이스라엘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엘렌 존슨-설리 라이베리아 대통령에게 이 별명이 붙여졌다. 하지만 이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철의 여인’은 단연 마가렛 대처 총리이다. 그녀는 작은 식료품 집의 딸로 태어나 옥스퍼드대학 서머빌 칼리지를 졸업한 후, 1959년 보수당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에너지부, 교육부 장관 등을 거쳐 영국 최초의 여총리가 되었다. 특히 영국 헌정사상 총리직 3번 연임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집권, 경제부흥을 이뤘으며 획기적인 정책 추진과 정부운영으로 ‘철의 여인’이라 불렸다.
대처는 1979년 보수당 당수로서 11년반 동안 국정을 이끌었다. 그가 취임했을 당시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은 침몰 직전이었다. 그 당시 영국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내건 과도한 복지정책 탓에 재정이 바닥났고, 고질적인 파업으로 사회 시스템도 마비되기 일쑤였다. 비대한 공기업을 장악한 전투적 노조는 정권을 갈아치울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선진국으론 처음으로 1976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지원받는 수모를 당했지만 교훈을 얻지 못했다.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마이너스 성장, 잦은 파업 등으로 이른바‘영국병’은 깊어만 갔다. 대처 수상은 고질이었던 영국병 치유에 나섰고, 그 핵심 수단은 대처리즘(Thatcherism)이었다.
대처리즘으로 불리는 영국식 신 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은 복지 축소, 규제 완화, 공기업 민영화 등으로 요약된다. 국가 경제가 저성장과 고실업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상황에서도 과도한 요구를 내세우며 파업을 일상화하는 노조에 대해 법치와 원칙을 관철한 것은 대표적인 예다. “국운이 걸린 일엔 타협이 있을 수 없다”고 천명한 그는 옥중 단식 투쟁을 벌이다 10명이 아사하는 극한 상황에서도 부당한 요구엔 타협하지 않았다. 노조에 타협하는 대신 공기업 민영화, 노조 개혁, 재정지출 삭감 등을 특유의 뚝심과 강한 신념으로 밀어붙였다.
대처가 취임했던 날 영국 FTSE 전 주가지수는 283.82을 기록했고 대처 총리가 통치했던 11년간 1031.25로 상승했다. 누적 상승률이 263%로 지난 50년간 영국 총리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것이다. 그 결과 자율과 책임을 중시하는 경제 개혁으로 성장 기반을 마련했으며, ‘복지 국가’ 패러다임을 새로 창출한 ‘신 자유주의’로 대체시킨 대처리즘은 현재도 모든 국가가 귀감으로 삼을 만하다.
영국과 유럽을 망치는 사회주의의 허상을 폭로하고 격파하는 것이 주요 목표 중 하나였던 그가 ‘자유’의 가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실천한 안보관 또한 돋보이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 1983년 미국의 순항 미사일을 유럽 최초로 배치하는 등 영국의 방위력을 크게 키웠고, 세계 속의 자유민주주의를 고수하기 위해 앞장섰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소련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을 지원하면서, 공산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공적 또한 세계사에 남게 됐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평가는 엇갈린다. 경제적인 측면만을 따져봤을 때 대처를 옹호하는 이들은 그가 영국병을 치유하고, 영국 경제를 살렸다고 평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빈부격차를 오히려 확대시켰다는 것이 그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이다. 민간 기업을 살리고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켰던 정책은 한편에선 오랜 기간 침체에 빠져있던 영국 경제를 되살렸다는 평과 함께 가난한 이들을 파산상태로 내몰았다는 평을 함께 받고 있다.
그러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누가 뭐래도 경제발전에 방해가 되는 그 어떤 행위와도 타협하지 않는 단호함과 자유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끊임없는 행보는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그의 어록 가운데 “당신이 그저 호감 가는 이미지로 남고 싶으면 무엇이라도 타협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얻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비록 이 구절은 시장경제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얘기한 것이지만, 다른 부분에도 해당될 수 있는 말이다. 이 사람 말도 듣고, 저 사람 말도 들어주면 ‘사람 좋다’라는 평가는 받을 수 있지만,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된다. 누군가 한 명은 모든 총대를 메고 비난의 소리를 듣더라도 전진하는 방법밖에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독재 대통령이라고 비하하지만 한편에서는 지금의 경제 한국의 기틀을 마련한 장본인임을 부인하지 못한다. 오로지 부국강병에만 전념한 박 대통령을 독재자보다는 투사로 재해석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칭찬과 비난의 소리는 항상 공존한다. 자신을 향한 비난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영국을 희망의 시대로 다시 이끌어준 대처, 이런 그의 서거는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지도자상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한다. 더불어 우리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마가렛 대처와 같은 대쪽같은 지도자가 탄생하길 기대해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