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6일은 전 콜로라도주 한인회 이사장이었던 박해춘씨의 3주년 기일이었다. 이날 박해춘씨의 유가족들은 박씨의 기일을 맞아 그의 묘지 앞에 한없이 눈물을 흘리고 돌아갔다.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오랜 친구 사이였던 박해춘씨와 이중희씨는 유타주 모압에 있는 부동산에 대한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이씨가 박씨를 살해 후 시신을 유기했다. 지난 3년 동안 연기를 거듭해가며 힘들게 진행됐던 고 박해춘씨 살인사건 선고 공판이 지난주 목요일에 열렸다. 그 동안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포커스도 그랬지만, 우리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진 매체는 콜로라도의 유일 일간지인 덴버 포스트지였다. 덴버 포스트지 담당 기자는 재판이 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재판장의 맨 앞자리에 앉아 꼼꼼히 재판 내용을 기록해 갔다. 지역 방송사들도 포커스 신문사에 관련 자료를 요청하고, 한인사회 친분인사들의 인터뷰 주선을 요청할 정도로 관심을 가졌다. 주류언론들의 관심 덕분에 포커스 신문사도 정보를 받은 적이 있었다. 사건이 막 발생했을 당시 폭스TV 기자와 만남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경찰에서 갓 입수한 정보를 하나 건넸다. 박씨가 가장 마지막에 만난 사람의 사무실에서 피 자국이 발견됐고 사무실 주인이 실종된 박씨와 관련이 있는지를 경찰에서 조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 실종 사건으로 처리될 수도 있다는 예측을 깨고 본격적인 살인사건 수사로 전환되었다는 따끈한 뉴스 소스였다. 이처럼 모든 매체들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그만큼 미주 한인사회에서 벌어진 몇 안 되는 끔찍한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지난 주 목요일 선고 공판에는 박해춘씨의 미망인을 제외한 박씨의 모든 유가족들과 얼굴이 알려진 한인사회 인사들도 몇명 참석했다. 마지막 날이라는 긴장감으로 법정은 여느 때보다 더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던 공판은 30여분 만에 끝이 났다. 이중희씨는 2급 살인의 최고 형량인 48년 형을 선고 받았다. 69세라는 이씨의 나이를 감안한다면 사실상 종신형에 해당되는 형량이다. 지난달 공판에서 이중희씨는 2급 살인 및 1급 폭행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받았지만, 전과가 없는 초범이었고, 당시 상황이 박씨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정당방위라는 자신의 정황을 배심원단에게 설명했고, 계획된 1급 살인이 아닌 2급 살인으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형량이 다소 낮아질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법원은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 그의 가족을 끝도 없는 슬픔 속에 밀어 넣은 이씨에 대해 일말의 아량도 베풀지 않았다.
한국인의 정서상, 아니 인간의 도리상으로 본다면 이씨의 가장 큰 문제점은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박씨의 사체 유기 장소를 끝까지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체를 유타 접경의 황무지에 직접 버린 장본인인 이씨는 분명 그 장소를 잘 알고 있었다. 경찰과 검찰, 필자 또한 수없이 물어본 질문이지만 이씨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끝내 그 장소를 알려주지 않았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유타주 접경지역의 허허벌판에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던 박씨의 유골은 아주 우연히 지나가는 사람들에 의해 발견됐다. 이 유골이 박씨의 것으로 드러나자, 그제서야 마지못해 시체를 큰아들에게 가져다 주려고 했다가 피곤해서 거기다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말도 안되는 진술을 해 유가족들을 다시 한번 오열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박씨의 유골은 20%정도 밖에 찾지 못했다. 또 하나는 마지막까지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선고 공판시 담당 검사는 마지막 진술을 통해 끝까지 죄를 뉘우치지 않았다며 법정 최고 형량을 선고할 것을 재판장에게 요구했다. 재판장은 이씨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냐고 물었고, 이씨는 없다고 간략하게 말했다. 법정에서는 실망스러운 듯한 가느다랗고 긴 한숨 소리들이 새어 나왔다. 이날 유가족들은 이씨로부터 ‘정말 미안한다. 의도적으로 한 일을 아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어서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진심어린 사과를 한마디쯤은 들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씨는 끝까지 이들을 외면했다.
정확하게 3년전에 발생한 이 사건은 콜로라도 한인 사회 역사상 최대 사건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죽은 사람이나 죽인 사람 모두가 한인사회에서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었다는 점이 우리에겐 더욱 충격적이었다. 한인회 이사장을 역임한 박해춘씨는 이민 온 이후 모텔 비즈니스를 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일궜다. 평소 욱하는 성격 때문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려운 동생들을 도와주는 의리있는 형님으로도 인정받았다. ‘고생 끝에 이제 살만하게 되니까 이렇게 됐다’ 면서 올드 타이머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시신 없이 치러진 장례식이었지만 애도의 발길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 같다. 살인범으로 남은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될 이중희씨 또한 융자업을 하면서 평범한 가정의 좋은 아빠, 좋은 남편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재판도 끝났으니 이들의 악연은 여기서 끝났으면 좋겠다. 유가족들의 애끓는 심정도 이해가 가지만, 무엇보다도 가해자인 이씨측의 가족들이 염려스럽다. 이 좁은 한인사회에서 그들이 설 자리가 벌써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비난에 찬 시선은 너무 가혹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예견치 않은 일은 일어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인 동포들 또한 양측 가족들을 위해 좀더 말을 아끼고, 신중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박씨와 이씨의 악연이 남은 가족에게까지 이어지지 않고 여기에서 끝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