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 얼굴을 참 못 알아본다. 이런 증상을 ‘안면인식 증후군’이라고 한다는 것을 불과 몇 년전에나 알았다.
얼굴을 얼마나 못 알아보냐 하면 금방 만난 사람도 돌아서면 그 사람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자이다 보니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할 일도 많은데 1시간씩 꼬박 인터뷰를 하며 같이 웃고 떠들다가 하루만 지나면 그 사람 얼굴이 깜깜해진다. 같은 사람을 기간을 두고 몇번씩 만나 다만 몇분이라도 이야기를 해야 그 사람 얼굴이 조금씩 눈에 익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살다가 난감한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사람 얼굴을 못 알아봐 무심히 지나치기가 일쑤이고, 엉뚱한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거나 이야기를 하는 일도 다반사다.
사람이 많이 오는 행사장에 가는 것이 그래서 참 불편할 때가 많다. 누군가 먼저 내게 아는 척을 하며 다가오면 만약 기억이 안 날 경우 혹시라도 이전에 물어보았을 수도 있으므로 “누구신지?”라고 묻는 것도 실례이고 함께 아는 척을 하며 대화를 이어나가는 수 밖에 없는데 그 사이에 누구인지를 열심히 눈치껏 생각해내야 하니 이만저만한 스트레스가 아니다.    
특히 사진 속 인물과 실제 인물을 비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빈라덴이 살아 생전에 공개수배 전단이 인터넷과 신문지상을 몇년씩이나 장식했었다. 빈라덴의 사진에다 수염을 붙였다 떼었다 조금씩 얼굴 형태를 바꿔가면서 ‘이러이러하게 생길 수도 있다’며 자세한 부연 설명까지 덧붙이며 말이다. 그러나 솔직히 얘기하자면, 빈라덴이 내 바로 옆에서 같이 밥을 먹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를 알아볼 수 있었을 지 의문이다.  하얀 옷을 입고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중동 사람들은 모두 다 내게 빈라덴과 똑같이 생겼으니 말이다. 만난 후 몇년이 지났다면 그 사람은 거의 처음 만난 사람 수준이 된다.
그래서 사람을 처음 만나면 그 사람의 특징을 재빨리 포착하고 이름을 기억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름과 그 사람을 만난 장소나 시간 같은 것을 기억하고 특징과 접목을 시키면 그나마 기억이 난다. 얼굴에 큰 점이 있다거나, 헤어 스타일이 특이하다거나, 두꺼비처럼 생겼다거나, 키가 특별히 크다거나… 특이하게 생긴 부분을 기억하는 것이 그 사람을 다시 기억해내는데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별로 특징없이 생긴 사람이나 일상적인 대화만 나누고 헤어지게 되는 경우 안타깝게도 이도저도 방법이 없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남편은 나와는 달리 사람 얼굴을 잘 알아본다. 그래서 같이 다니다가 누가 아는 척을 하면 열심히 대화를 이어가는 도중 슬쩍슬쩍 남편에게 눈빛으로 사인을 보낸다. 그럼 혹시 남편이 함께 만난 사람일 경우 몇가지 키워드를 넌지시 알려준다. 거의 부부사기단 수준이다.
 하지만 일단 얼굴을 익힌 후 그 사람을 만나면 참 반갑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친분을 쌓고, 서로를 알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무인도에 떨어져 혼자 살아가야 했던 로빈슨 크루소는 그래서 더더욱 외롭고 고통스웠을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 지쳐 다 버리고 떠나 혼자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러나 낯선 사람들로 가득 찬 곳에 가게 되면 또 다시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불리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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