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란 무엇인가. 자신이 속해 있는 부분에서 최고일 때 우리는 그들을 전문가라 부른다. 학력과 출신성분을 따져서 전문가인지 아닌지를 논하는 시대는 지났다. 특히 미국에 사는 우리에게 는 더욱 그렇다.
필자의 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군 검찰로 예편, 38년동안 동안 국방부 소속 고위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퇴임했다. 대통령 훈장보다 더 높은 국민훈장을 목에 걸면서 말이다. 여기서 필자는 아버지를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는 비록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지만 국가가 필요한 인재였고, 그 분야의 진정한 전문가로서 후배들에겐 신화와 같은 존재로 남아있다. 그는 학교가 나눠주는 졸업장이 전부가 아님을 몸소 보여주었다.
지방에서 학교를 졸업했던 남편이 서울에서 직장을 구한 건 필자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던 필자를 따라 신접살림을 일산에 차렸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구한 직장은 공장 자동화 관련 일을 하는 중소기업 회사였다. 10년의 현장 경험을 가진 남편으로서는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양대 공대 출신의 신입사원이 들어오면서 그의 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회사 사장의 직속 후배이었던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월급에서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 때문에 서울로 오면서 그는 처음으로 비열한 학력과 인맥 우선주의를 절감하게 됐다. 이것이 우리가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했던 가장 큰 이유였다.
미국은 열심히만 살면 언젠가는 보상받고, 애들도 잘 키울 수 있는 곳이라 믿었다. 학벌보다는 재능이, 돈보다는 성실함이 필요한 곳이 미국이라며 지금까지 살았다. 그런데 최근 한 봉사단체의 회원을 모집하는 광고를 보면서 한국의 도심 한복판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봉사를 위한 비영리 단체라고 명시하고 있는 Colorado Korean American Community Foundation(CKACF)에서 임원과 회원을 모집하는 광고를 보면서 거꾸로 가는 이민 사회를 실감했다. 자격은 미국 정규대학 석사 이상 또는 그에 준하는 교육을 이수하고 미국 사회경험이 풍부한 전문직 종사자, 대학 4년 이상의 교육 이수자 및 또는 그에 준하는 전문직 종사자 등이다. 사회 봉사를 하는데도 최종학력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는 사회라니, 이런 아이디어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걸까. 얼핏 보면 연구 논문을 발표하는 단체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하는 일이라는 것이 전문지식 및 취업정보교환, 함께 하는 레져 스포츠 취미생활 공유 및 사회봉사를 목적으로 한다고 적고 있다. 결국 학벌 높은 이들끼리 모여서 놀기도 하고 봉사도 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중졸, 고졸을 낄 수 없고, 설령 들어가더라도 위화감이 느껴질테니 알아서 오지 말라는 뜻이다. 어느 이민 사회에서도 보기 힘든, 학력 따지는 봉사단체가 이 좁은 콜로라도 한인사회에서 나왔다.
사실 이 단체의 광고가 나간 뒤 3통의 전화를 받았다. “자기들끼리 조용히 결성해 봉사를 하던지, 놀던지 할 일이지, 왜 신문에까지 광고를 내서 사회적으로 거부감과 괴리감을 느끼게 하느냐, 이민와서까지 학벌 차별을 받아야 하느냐”는 내용이었다. 그렇다. 이민사회는 학벌과는 전혀 상관없는 동네이다. 문제는 이런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교민화합에 앞장서야할 영사관 측이 이런 단체 결성의 전반 과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우기 기존의 한미 연합회에는 한번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영사관 측이 무조건 새로 만들고, 시행하는 것이 능사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 좁은 콜로라도에서 분란의 시초가 될 소지를 충분히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린 이미 두 개의 한인회의 전철을 충분히 알고 있다. 일을 하겠다는 의지는 좋지만, 직면한 한인사회의 특성을 살펴야 하는 것이 영사관 측의 본분이다.
사실상 이 단체의 성격은 기존의 한미연합회에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미 연합회의 회원을 모집할 때도 이런 식의 광고는 없었다. 이는 대놓고 “우리는 너희들하고 다르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덴버는 뉴욕과 LA와 같은 대도시와는 확연히 다르다. 타주에 비해 거주 한인 수도 적지만, 대학을 졸업한 인구는 20%가 채 되지 않고, 석사 졸업자들은 더욱 드물다. 결론은 잘난척 할 거면 조용히 해라는 말이다. 어차피 모일 사람들은 끼리끼리 알아서 모이게 되어 있다.
필자는 신문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20여년동안 이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으니 겉보기는 전문가라 볼 수 있다. 이런 입장에서 이 단체의 회원 및 임원 자격을 보면서 이민 사회에서의 진정한 전문가를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보여지는 대학 졸업장은 없지만, 빈손으로 미국으로 건나와 지난 30년 동안 묵묵히 한길을 걸으면서 성공한 비지니스맨,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꾸준히 봉사해 온 사람들, 그리고 한글을 알리기 위해 힘써 온 이들, 그 지역에서 한인 대표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이들, 그리고 훌륭한 한인 2세를 키워낸 어머니들 또한 이민사회에서의 진정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인생 노하우야말로 이름 뿐인 대학, 대학원 졸업장보다도 더욱 전문적이다.
물론 봉사단체가 많이 생기면 교민한테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번과 같이 동포사회에 잘난 척과거리감으로 시작되는 단체가 어떤 의미로 성장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교민 대상이 아니라 주류사회 대상으로 봉사를 한다고 해도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