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덴버 한인사회를 돌아다니다 보니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만나면 기분 좋은 사람들도 많아졌다. 안 보면 보고 싶은 사람도 많아졌고, 전화가 뜸하면 소식이 궁금해지는 이들도 많아졌다. 그만큼 필자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반면 보기만 해도 화가 나는 사람들과 내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는 않았지만 그냥 싫은 사람들도 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한 건축회사는 몇번씩 사기를 쳐 놓고 원성이 커지자, 2년정도 타주에서 살다 다시 돌아와서 또다시 사기를 치고 있다. 그런데 이 회사에 대해 하소연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말을 한다. “전에 알던 사람이어서 일을 맡겼다”는 것이다. 그 말은 전에도 당했는데, 이번에 또 당했다는 말이다. 이런 이들을 볼때면, 콜로라도에 사는 한인들의 인성이 훌륭한 것인지 아니면 머리가 나빠 과거를 쉽게 망각해버리는지 혼란스럽다. “어쩔 수 없지, 옛날에 아는 사람인데…” 혹은 “자기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도와줘야지”하면서 과거의 잘못을 애써 용서해준다.
돈 빌려주는 융자회사랍시고 대대적으로 광고하더니 6개월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회사가 있었다. 이 회사를 운영한 사람은 이 곳에서 10여년 살면서 여러 사람들과 안면 정도를 익히고 살았다. 그러다 거액을 융자해 주겠다는 조건으로 선금을 요구한 후에, 선금만 홀랑 걷어서 타주로 야반도주를 했다. 그후 3년쯤 지난 어느날 오로라에 있는 한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마치 그는 아무일도 저지르지 않은 순한 양처럼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재력가로 거들먹거리는 한 남자가 마주보고 있었다.
필자가 직접 겪은 양심 불량자들도 있다. 오래전 몇 번이나 신문사로 전화해서 광고를 요청해 내주었다. 몇 달동안 장사가 안된다고 해서 날짜가 지나지 않은 포스트 체크를 두어번 받았다. 그것도 결국 입금을 시키지 못했다. 그리고는 1000달러의 광고비가 4년동안 남아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만나 발란스가 남아있는거 알고 있냐고 물으니 폐업을 했다면서 오리발을 내밀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폐업은 했지만, 다른 비지니스를 크게 시작했다. 하지만 폐업했다는 그 비즈니스를 업소록 리스팅에 넣어달라고 신문사 직원에게 버젓이 부탁을 했다. 또 그는 어이 없게도 새로 차린 비지니즈의 신문광고를 의뢰하려 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의 광고를 넣게 되면 신용좋은 기존 광고주들에게 민폐가 될 것 같아서 단칼에 거절했다.
또 다른 양심불량자는 현재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내지도 않은 광고비를 현금으로 냈다면서 우기고, 급기야 신문사를 도둑 취급까지 하더니, 1년이 지나서야 사과의 말을 던졌다. 알고보니 신문사 광고비 뿐 아니라 이사비용 등 다른 업체에도 돈을 지불하지 않는 신용 불량자였다. 카운티에서 제공하는 푸드 스탬프 혜택을 받아내려고 거지꼴을 하고 나타나서 구걸하고, 갚을 돈이 깔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식하고, 자동차 바꾸고, 줄기차게 룸살롱 다니는 이 사람들의 정체는 참으로 모호하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남의 돈은 돈이 아니고, 자기 돈만 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진 돈이 없어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돈을 우습게 여기기 때문이다. 극히 이기주의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곧잘 ‘좋은 게 좋다’ ‘편한 게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이미 서로가 서로를 포기하겠다는 묵계나 다름없다. 휴대폰으로 떠드는 사람들, 아무데나 침을 뱉는 사람, 식당에서 소리 지르는 사람, 남의 돈 떼먹고도 떳떳한 사람, 약속을 밥먹듯이 어기는 사람들처럼 몰상식하고 염치없는 짓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냥 지나친다. 속에서는 욕이 나와도 참는다. 더러워서 피하고 귀찮아서 피하고 시비가 걸릴까 피하고 말아버린다. 번번히 해야 할 말인 줄을 알면서도 할 말을 죽이고 산다. 그러다 보면 자기 소리를 내지 못하는 자신에게 비굴함과 굴욕감을 느끼게 된다. 좋게 좋게 지내기 위해서 그리고 편하게 지내기 위해서란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것만은 결코 아니다.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잊어버리고 용서하는 사람들 때문에 저 사람들은 나쁜 짓을 더할 가능성이 분명 높다. 지나쳐 버린다면 결국 피해는 본인이 받게 된다. 이럴때 하는‘지적질’은 까다롭다고 말하기 보다는 본인의 피해를 줄이고 상대의 잘못을 깨우쳐주기 위한 현명한 방법 중의 하나이니 권장한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다. “나쁜 건 나쁘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알아차릴 정도로 신용이 떨어지는 악덕 업체에 대해서는 비록 친분이 있다 하여도 이용을 자제해야 한다. 우리의 무분별한 관대함이 이들의 도덕성과 책임감을 무뎌지게 만든 셈이다. 관대함이란 정말 실수로 저지른 일에만 적용될 수 있는 단어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하는 것 또한 쌍방이 지킬 때 가능한 일이다. <편집국장 김현주>
- 기자명 김현주 편집국장
- 입력 2012.10.18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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