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생도의 자살 노트

나를 기억해주세요.
 
내 눈을 드립니다.
평생에 한 번도 노을을 보지 못한 당신
엄마의 사랑스러운 시선을 알지 못하는 작은 아기
내 눈을 빌려 세상을 보세요.
 
일상처럼 반복되는 고통 속에서 누군가의 심장만 기다리는 당신
내 튼튼한 심장을 드립니다.
 
내 뜨거운 피는
혹시 자동차 사고로 피를 흘리는 청년이 있다면 그에게 주세요.
훗날 그가 손자들의 재롱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내 신장은
평생 기계에 의존해서 몸 안의 노폐물을 제거해야 하는 사람에게 주세요.
 
내 뼈와 신경조직과 단단한 근육은
선천적으로 기형인 어린아이들에게 주세요.
아이들이 걸을 수 있게
 
내 뇌는
한 부분씩 잘게 나누세요.
말을 못하는 소년에게는 언어의 뇌를
듣지 못하는 소녀에게는 청력의 뇌를 주세요.
소년이 자신 있게 소리 칠 수 있도록
소녀가 창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그리고 내 영혼은
잠시 나마 내게 생을 허락하신 나의 신, 당신께 드립니다.
 
만약 당신이 나를 기억하신다면
따뜻한 말로 '내게 꼭 필요했던 한 사람'이라고 말해주세요.
.
이렇게 해주신다면 난 당신들 안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입니다.

2010년 9월 16일
마크
 
장의사에서 전해준 엽서의 앞면에는 공군 조종복을 입은 마크의 사진이, 뒷면에는 그가 어디선가 베꼈다는 시가 적혀 있었다. 시는 그의 자살 노트였고 유서였다.
내가 살고 있는 콜로라도 주 콜로라도 스프링스는 미국 중부의 산간 지역으로 로키산맥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도시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공군 사관학교다. 한국의 사관학교처럼 미국의 사관학교도 명성이 높아서 미국 전역의 인재들이 몰려들며 입시경쟁률도 꽤 높다.
마크는 공사 4학년생이었다. 그는 조종 특기를 가진 유능한 학생으로 막 소위 계급을 달고 부대 배속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장래가 촉망되는 똑똑한 청년 마크가 왜 자살이라는 극단의 방법을 택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일기에 따르면 그는 미리 죽을 준비를 했고 확실한 죽음을 위해 준비한 흔적이 역력하다는 것이었다.
아침에 샤워를 마친 마크의 룸메이트는 늘 그랬듯이 그에게 함께 식당에 가자고 했다. 마크는 속이 좀 좋지 않으니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대신 돌아올 때 매점에서 소화제를 하나 사다 달라고 했다. 아침식사가 끝나고 매점이 문을 열 때까지는 20분 정도의 여유가 있어 룸메이트는 다른 친구들과 커피를 마신 후 소화제를 구입해 방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방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룸메이트는 한참을 두드려도 마크가 방문을 열지 않자 사감을 불러서 마스터키로 문을 열었다.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룸메이트는 몇 번이나 마크를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룸메이트는 강의 시간이 다가오자 제복을 갈아입기 위해 벽장문을 열었다. 그런데…….
벽장 속에서 허리띠로 목을 맨 마크가 발견되었다. 룸메이트는 혼비백산 밖으로 뛰어나가 옆 방문을 두드렸다. 친구들이 합세해서 마크를 끌어냈지만 이미 호흡은 거의 멈춘 상태였다. 친구들은 구급차를 부르고 심폐 소생술을 시행했다. 병원에 도착한 마크는 곧장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일리노이 주에 살고 있는 부모에게 연락이 닿았고 형 둘도 병원으로 달려왔다. 마크는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아왔는데 약을 복용하며 증상이 호전되어 다들 별 걱정을 안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그는 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사전에 자살 계획을 철저히 세웠던 것 같다.
문을 안에서 잠근 것이나 매점에서 약을 사오라고 한 것 그리고 일기에 자살 계획을 기록한 것이나 한 편의 시로 마지막 편지를 남긴 것 등은 그의 죽음이 자살임을 확신시켜주었다. 마크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공군사관 학교에 입학했고 가장 우수한 학생만 얻을 수 있다는 조종 특기를 취득했다. 이듬해 5월이면 임관이 예정되어 있던 그는 학업 성적 전교 5위 안에 들 정도로 우수하여 졸업식 때 사관학교장 상을 수상하기로 되어 있었다.
엽서 속에서 마크는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미소 뒤에 어떤 고통이 숨겨져 있었을까. 우울증은 물론 정신질환 중 하나이지만 신체, 특히 뇌 안의 화학적인 리듬이 깨지면 생길 수도 있는 기질적 질환으로도 알려져 있다. 어떤 물질이 뇌에 영향을 미쳐서 하나의 생각에만 몰입시키는 것. 그 물질이 무엇인지, 어떤 기전으로 뇌에 영향을 주는지는 아직 이론적으로 확실하게 정립되지 않았다. 행복감을 조절하는 세라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과 우울증이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대부분의 항우울제가 세라토닌을 조절하는 약물들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쇠고기와 닭고기에는 세라토닌이 풍부해서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식단에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물론 이런 것들은 아직 확립된 이론은 아니다. 다만 우울증 환자들의 정황들로 보아 그럴 수도 있으리라고 가정할 뿐이다.
어찌 되었거나 우울증은 심각한 질환이다. 환자 스스로 병을 인정하고 도움을 청할 때만 치료가 가능하다. 그런데 마크는 가족과 떨어져서 기숙사 생활을 했고, 최고로 어렵다는 파일럿 과정을 수료하며 '잘해야 한다'는 심리적인 부담감이 너무나 컸던 것 같다. 누군가의 도움을 청하기엔 스스로의 생각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고, 어쩌면 완벽한 신체와 정신을 요구하는 사관학교라는 엄격한 학제가 높은 벽이 되어 스스로 도움을 청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골똘하게 제 생각에만 빠져서 자살만이 최선이라고 결론 내리고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홀로 죽음을 준비했을 그의 시간들은 시리게 외롭지 않았을까.
가족들이 속속 도착했다. 아버지와 큰형은 공군 사관학교 출신이었다. 큰 형은 현재 공군에 복무 중이었고 아버지는 전역 후 조종사로 일하고 있었다. 마크의 가족은 생각보다 침착했다. 엄마조차도 아주 의연하게 아들의 죽음을 대했다. 그리고 가족이 장기 기증 동의서에 서명을 한 후 장기기증을 주선하는 팀이 병원에 도착해서 수혜자의 명단을 확인하고 수술 일정을 잡았다.
안구, 폐, 두 개의 신장, 췌장, 소장의 일부, 뼈, 피부 등 장기를 기증받을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병원의 의사들과 장기기증 센터의 의사들이 속속 도착했고 마크는 수술실로 옮겨졌다. 그의 소원대로 마크는 하나도 남김없이 주고 떠났다. 홀연히 떠난 그를 통해 일곱 명이나 되는 사람이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장의사가 보내온 엽서 속에서 마크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잘 다녀갑니다. 길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편안합니다. 여러분들을 통해 나는 영원히 삽니다.”
사진 속의 그는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마크가 떠난 지 몇 달이 지나고 그 아픔이 서서히 사라질 무렵 나는 어느 세미나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마크의 장기증여를 담당했던 코디네이터를 다시 만났다. 그곳에서 그녀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는 참으로 놀라웠다.
마크가 제 옷장에서 목을 멜 결심을 한 그 시간쯤에 마크의 쌍둥이 형은 뉴욕의 월 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전신이 마비되면서 쪼이더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가 밀려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 10분쯤 지난 후 그는 다시 편안해지며 괜찮아졌단다. 그리고 그날 오후 그는 전화로 쌍둥이 동생 마크의 사고를 알았다고 한다. 그가 자신이 편안해졌던 것처럼 마크도 편안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의 엄마는 마크가 죽기 몇 달 전에 교통사고로 한쪽 턱뼈를 다쳤다. 마침 마크가 장기를 기증하면서 남긴 뼛조각이 있어서 엄마의 턱에 이식했다고 한다. 그녀의 상처는 잘 아물고 있다. 그녀는 아들이 자신의 몸 속에 살아 있는 것 같아 하루하루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한편 마크의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들은 모두 건강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 연락망을 조직하여 한 가족처럼 지내기로 했다.
가을은 낙엽을 떨구는 계절이다. 모두 떨궈낸 후 벌거숭이로 매섭고 추운 겨울을 보내야 이듬해 봄 새 잎을 얻는다
마크는 길게 살지는 않았지만 사는 동안만은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마지막 선택만 제외하고 말이다. 어쩌면 그 선택마저 그에게는 최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여러 질환에 걸려 고통받던 여러 사람들이 편안해질 수 있었다. 그들은 마크의 희생으로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마크가 주고 간 것들은 봄날 싹을 틔우는 새잎이 되어서 한 가지 안에 머무르게 되었다. 여린 봄 잎은 머지않아 한여름의 녹음이 되리라. 희망을 잡고 새 잎을 기다리던 이들을 위해 마크는 그렇게 모질고 모질게 이생을 떠나간 것일까.
마크의 자살을 보면서 죽음을 바라보는 너무나 다른 나의 시선에 스스로도 놀란다. 자살이라는 죽음의 방법에는 화가 났지만 죽음 뒤에 할 수 있는 일들은 좀 달랐다. 마크처럼 아낌없이 주고 가는 사람도 있지만 병력이나 가족의 반대로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자살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청년의 생명이 부질없이 스러지지 않았음을 증거하며 그 기억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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