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전쯤인가 샌프란시스코 영사관측에서 콜로라도 광복절 행사에 후원할 의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인회가 두 개가 있으니 특정 한인회를 지목해 행사를 여는 것보다 콜로라도 전 동포가 주최하는 형식으로 행사를 하는 것은 어떻겠느냐며 의견을 물어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물음에 대해 답변하기가 모호했다. 주관 단체도 없이, 막연하게 동포의 이름을 걸고 행사를 치러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론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는 계획이긴 하지만 기존의 관례에서 벗어난 행사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두 한인회가 공동으로 광복절 행사를 치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필자의 답변은 더욱 암담했었다.

   지금까지 한인회 내의 소소한 의견 대립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지만, 본격적인 대립은 10여년전 노인회와 한인회간의 법정분쟁이 공론화 되면서 시작됐다. 콜로라도주 한인회와 노인회가 같은 회관 건물에서 한 솥밥을 먹으면서 갈등이 생겼고, 오랜 법정공방 끝에 미국 법원에서는 ‘한인회와 노인회는 회관을 매각해 각자의 지분을 챙겨가라’고 판결내렸다. 이 당시 노인회측에서 한인회와 대립관계에 있던 몇 명이 새로운 한인회인 덴버광역한인회를 결성하면서 덴버에는 두 개의 한인회가 존재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6여년이 지났다. 그동안 콜로라도주 한인회의 이미지는 동포사회에 대한 봉사활동보다 개인 감정을 내세워 법정싸움을 취미 삼아온 이름뿐인 단체였다. 그러다 최근 콜로라도주 한인회에서는 다행히도 새로운 비전을 가진 한인회장이 선출되었다. 덴버 광역한인회는 콜로라도주 한인회에 대한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가 하면 더 잘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창립됐다. 그동안 나름 열심히 노력은 했지만 한인사회를 위해 일할 인재들의 참여부족으로 1, 2, 3대 회장직을 한 사람이 지키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존의 한인회보다 인정받는 한인회를 만들어 보겠다는 처음의 각오는 점차 흐려졌고, 결국 콜로라도에 있는 한인회 중 하나라는 단순 타이틀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특출나게 뛰어난 업적은 없다해도 기울어져가는 콜로라도주 한인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비젼을 제시할 수 있도록 늦게나마 경쟁심리를 부추켰다는 점에서는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만하다.

   이처럼 이들은 결코 만나서 타협할 수 없는 존재였고, 늘 못마땅한 존재였던 이들이 함께 광복절 행사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영사관측에서는 두 한인회가 공동으로 광복절 행사를 개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믿었고, 이를 적극 도왔다. 행사 진행을 위해 만난 이들은 광고 문구 하나, 식 순서를 정하는 것에도 신경이 날카로워 보였지만 결국 합의점을 찾았고, 콜로라도 한인 역사상 최초로 광복절 기념식 공동주최라는 거사를 실현시켰다.  10여년동안 덴버에서 기자생활을 하면서 이번 행사와 같은 광복절 기념식은 처음이었다. 행사에 참석한 사람의 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가 광복절날, 자신의 동네에서 열리는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고 콜로라도 기념식에 참석한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고, 콜로라도주 한인회장과 덴버 광역한인회장이 차례로 기념사를 발표한 것도 한인회가 두 개로 나눠진 이후 처음있는 일이었다. 비록 내일 또다시 등을 돌리고 반목의 시간을 가질지도 모르지만, 광복절날 만큼은 조국의 광복을 함께 경축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는 것은 분명 성숙된 모습이었다. 

   이번 행사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이제 우리도 새로운 한인회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축사에서 한 회장이 이런 말을 했다. 콜로라도주에 있는 3개의 한인회는 나름 지역에 맞게 역할을 하면 된다고 말이다. 콜로라도주 한인회는 콜로라도주 전체를, 남부 콜로라도 한인회는 콜로라도 스프링스 지역을, 덴버 광역한인회는 덴버 메트로 지역을 중심으로 동포사회에 봉사하면 된다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갈등의 시간을 보내며 동포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지만, 의견 조율의 시간을 끝나면 더 큰 힘을 가진 한인회가 탄생할 것이라고 말이다. 이처럼 갈등과 반목의 시간을 솔직히 털어놓고 인정하는 것 자체가 우리 한인회가 어떤 방향으로 정립되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광복절 행사는 콜로라도 한인사회에서도 새로운 빛을 찾은, 우리의 광복절이기도 했다. 한민족이기에 함께 축하하고, 응원해야 할 일들이 있다. 매일 쿵쾅거려 미웠던 아파트 윗층사람들이 올림픽 축구 한일전 때는 밉지 않고, 오히려 그들과 공감대가 형성되는 이유는 우리가 한민족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당리당략에 따라 서로 헐뜯다가도 독도와 위안부 문제만큼은 한 목소리를 내야하는 것도 한민족이기 때문이다.   하나와 하나가 뭉치면 더 큰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번 광복절 행사를 통해 2개의 한인회가 뭉치면 큰 1개의 한인회를 만들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희망을 주선한 샌프란시스코 영사관에 감사의 뜻을 전하고, 내년 광복절날에는 더 크게 하나된 콜로라도 동포사회를 기대해 본다.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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