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학살을 방불케 했던 끔찍한 사건이 오로라에서 발생했다. 전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이 사건은 지난 20일 새벽 오로라 센츄리 극장에서 일어났다. 이 날은 배트맨 신작 영화 상영이 시작된 날이었다. 심야 상영 도중 방독면을 쓰고 방탄복과 총기로 무장한 한 남자가 최루탄을 뿌리고 총기를 난사하면서 12명이 사망하고 59명이 다쳐 역대 최악의 총기 난동 사건으로 이름을 올렸다. 배트맨의 연출인 줄 알았던 관객들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다. 용의자는 지난달까지 연방장학금으로 콜로라도대 의대의 신경과학부 박사과정을 다니던 우등생이었다. 속도 위반딱지 한 장 외에는 범죄 기록도, 테러 연루 혐의도 없었던 그의 범행 동기는 아직까지 미스터리다.

  사건 당일 이른 새벽, 필자는 기자의 전화를 받고 사건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TV를 켜자 모든 방송사가 이 사건을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주 가던 극장이었고, 한인 밀집지역인 오로라에 위치한 곳이었기 때문에 놀란 가슴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더구나 전날 배트맨 시사회를 보러 갈 것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터라 행여 아는 사람이 다쳤을까 가슴이 쿵닥거리기 시작했다.   사건 용의자인 제임스 홈즈는 체포 직후 경찰에게 “나는 조커(배트맨 영화의 악역)”라고 말한 것을 끝으로 지금까지 묵비권을 행사 중이다. 조커의 캐릭터를 분석해보면 범인과 상당히 닮았다. 조커를 잘 설명하는 단어는 본능과 카오스(chaos)이다. 왜냐햐면 조커는 일반적인 사회적 규범과 법으로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질서가 무너진 혼란사회 카오스, 정의가 사라진 본능의 세계에서 날뛰는 존재가 바로 ‘조커’이다. 배트맨에 나오는 “Why so serious?” 는 조커를 상징하는 유명한 대사다. 자신의 입이 찢어진 이유를 설명하는 대사 다음에 언급된다. 특이한 것은 2번 언급되는 흉터의 이유가 다르다는 것인데, 아버지에 의해 생겼다는 내용은 가족애를, 아내를 위해 직접 그랬다는 것은 사랑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조커의 흉터는 그가 인간사회의 가장 근본적으로 신뢰하는 개념인 가족애와 사랑조차 부정하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결국 Why so serious?라는 대사는 아버지가 아들의 입을 찢는 것이 심각하긴 커녕 웃음의 대상이 될 만큼 일반적인 도덕 관념에서 벗어나 바깥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 영화에 나오는 조커의 캐릭터는 대충 그랬다.  현실로 돌아와 범인의 태도를 살펴보자. 월요일 법정에 출두한 홈즈는 무표정한 얼굴로 꾸벅꾸벅 졸기까지 해 더욱 공분을 샀다. 확실히 현실과 동떨어진 인물이긴 하지만 정신병으로 꾸미기엔 한계가 있다. 한 주류 언론사에서는 범인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자신의 행위를 정신병으로 위장하려는 시도가 엿보였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필자가 덴버에서 기자 생활을 한 이후 이번 사건처럼 콜로라도가 대외적으로 관심을 받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1999년 컬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사건과 산불외에는 콜로라도는 그다지 범죄가 많이 발생하지 않는 안전하고 조용한 시골 동네 정도로 인식되어 왔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오로라시는 단번에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가 되었다.     사건 발생 당일 신문사 전화통은 불이났다. 샌프란시스코 영사관을 비롯해 한국일보 미주 본사, 시카고 지사,버지니아 한인 방송국 등 각 지역에서 사건 관련 자료를 요청해왔다. 우리는 주간 신문이기 때문에 기사 작성을 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이들의 요청으로 당일 취재를 하기로 결정했다. 취재 중 한인 청년이 엉덩이에 관통상을 입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미주 각 한인 언론사들에게 이러한 상황을 긴급히 전달했다. 밤7시 오로라 시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이 끝나고 보도자료 송부를 마친 후에야 이날 하루 일과를 접을 수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긴 하루였던 것 같다.

   하지만 어이없이 죽은 피해자 유가족들의 하루만큼은 길지 않았을 것이다. 12명의 죽음이 너무나도 억울한 이유는 그들이 죽어야할 이유없이 죽었기 때문이다. 함께 극장에 갔던 친구와 자녀들을 위해 자신의 온몸으로 총격을 막았던 이도 있었고, 군인과 암호 해독기술자 등 국가적 인재도 그 자리에서 숨졌다. 미래의 스포츠 저널리스트와 미술 교사, 그리고 생활전선에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뛰어왔던 그들의 죽음이기에 슬픔보다 분노가 먼저 치밀어올랐다. 특히 6살짜리 베로니카의 사망 소식은 전세계인들의 콧등을 시큰거리게 하기 충분하다.

 아직 범인의 정신병력에 대해 단정지을 순 없지만 총포상과 온라인을 통해 총과 총알을 대량 구입하고, 치밀하게 사건 계획을 꾸미고, 집 안에까지 폭탄을 설치했다는 것은 멀쩡한 정신상태에서 진행된 일임에 틀림없다. 설령 정신병력이 있다 해도 이를 단죄하는 재판부의 판결에는 영향을 미치지 말아야 한다.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평생 씻을수 없는 상처를 남긴 것은 오히려 단순한 사형 구형이 형벌로서 부족할 지경이다.   다시는 이런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사건이 발생하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12명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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