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현숙한 그리스도인인가?

현숙한 사람과 미숙한 사람의 특징을 살펴보면 주는 것과 받는 것에서 잘 들어난다.
미숙한 사람은 받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늘 준 것만 기억하므로 상대가 조금 실수하거나 불쾌한 일을 했을 때 드러내 놓고 분을 내며 흥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숙한 사람은 준 것은 잃어버리고 받은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조금 실수하고 조금 잘못을 했어도 분내고 흥분하지 않는다. 받은 것을 아는 사람이 현숙한 사람이요 은혜를 아는 사람이다. 우리 현숙한 성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값없이 공짜로 받아서 이 지상에서 천국을 경험하며 그것을 기쁨과 감사를 가지고 소개하며 나눠주는 사람들이 되었다.
 
  우리는 자주 교회에서 혹은 우리의 조직 안에서 미숙한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 "흥! 꼴불견이야 쳇!" 그런데 문제는 정말 못 볼 것을 보았기 때문에 나누는 비방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은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순수한(?) 시기심 때문에 터져 나오는 소리들이기 십상이란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의 현숙한 사랑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은 시기 하지 않습니다.(고린도전서13:4)" 곧 참된 현숙한 사랑은 [시기]와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시기]는 미숙한 어떤 사람이 자기의 인기나 존경의 자리를 남에게 빼앗겼을 때 느끼는 분노의 감정을 말한다. 시기심이야말로 미숙함의 표본적 증거이다. 그것은 심리적 불안정과도 연관있다. 현숙한 사랑은 다른 이들의 좋은 모습을 보고 기뻐하나, 시기는 극히 이기적인 [소유욕]에서 비롯된다. 시기는 미숙한 사람의 전유물이기 때문에 어린애 같은 말 가운데 나타나 있다. "만일 그이가 그 여자에게 말을 걸기만 하면, 그땐 날 떠나기로 마음 먹은게 틀림없어."  종종 우리는 상대방을 전적으로 소유하고 싶어 하며 나 이외의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경계하고 제외하려한다. 시기심이 있는 사람은 자기의 데이트 상대가 아무 이성에게나 말을 걸기만 해도 바짝 긴장을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성숙한 사랑은 아니다.
  더욱 미숙한 모습의 시기심은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제 삼자간의 관계에 대해서 조차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기심이다. 수잔은 죤과 전혀 데이트할 마음이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죤이 메리와 다정하게 걷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그날부터 수쟌은 두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하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인가? 극단적인 시기심의 발로이다. 시기심은 반드시 연인들 사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자녀들 사이, 교사와 학생들 사이, 같은 회사상사와 부하직원들 사이, 교회 안에서 교인들과 교인사이....
누군가 당신자신 보다 다른 사람에게 더 관심을 주고 눈길을 두게 되면 끓어오르는 투기심은 바로 당신이 현숙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증거다.

인생은 기차를 타고 먼 여행을 하는 사람과 같다.
먼 기차 여행을 하다보면 중간 중간 간이역이 나오면 그 곳에서 잠시 쉼을 얻는다. 그 간이역에는 맛있는 국수가 기다리고 있고 여러 가지 정감이 가는 고향의 맛을 볼 수 있다. 올 한해도 벌써 12월을 보내고 있고 잠시 후면 2010년 새해를 맞이하게 된다. 2009년 12월은 우리 모두가 간이역으로 여기며 내 자신이 미숙한 사람인지 현숙한 사람인지 조차도 모르며 달려 왔다면 잠시 쉼을 가지며 자신을 점검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당신이 현숙한 사람이 된다면 2010년은 조연이 아닌 주연이 돼서 어디든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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