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파는 김, 새우깡과 같은 과자류에도 제조일자와 밀봉한 담당 직원의 이름이 찍혀있다. 이러한 실명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 제품인 만큼 먹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고, 만약 잘못되었을 경우 확실히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사실 실명제는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한국의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고객들의 주문 상품을 보다 빠르고 안전하게, 책임 배송을 위해 ‘배송기사 실명제’를 실시한지 오래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상품 배달을 완료하겠다는 마트 측의 의지이다. 고객들의 반응도 좋다. 시내버스에도 ‘운전자 실명제’가 실시되고 있다. 시민을 가족처럼 안전하게 모시겠다는 안내문이 버스 운전자의 사진과 함께 승차하는 앞문 옆에 부착되어 있다. 이렇게 운전기사 실명제 실시함으로써 운전자의 과속이나 난폭 운전 등을 사전에 예방하고 안전운행을 도모하겠다는 취지이다.

한국의 한 대표 보일러 업체인 귀뚜라미 보일러에서는 2000년대 초부터 고객만족을 실현하기 위해 전국에 근무하는 서비스기사를 공개하는 서비스 기사 실명제를 도입해 보일러 업계의 서비스질 향상에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유명 제과업체인 파리 바게뜨 역시 빵이 구워진 시각과 만든 제빵업자의 이름이 표기된다. 요즘은 아이스크림, 과자, 식료품 등 실명제가 실시되지 않는 품목이 드물다.  이처럼 한낱 과자봉지에도 담당자의 이름이 부착되어 있는데, 여론을 대변하는 신문사에서 작성자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재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기사는 신뢰할 수 없을 뿐더러 기사에 대한 책임회피를 스스로 공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기사실명제(記事實名制)는 기사를 작성한 사람의 이름을 표기하는 제도이다. 사실상 1970년대까지만 해도 기명기사는 대체로 특정 기사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와서 칼럼 및 취재기사, 해설기사 등에 칼럼리스트나 기자 이름을 정식으로 밝히는 관행이 형성되었다. 그러면서 1993년 4월 1일에 조선일보가 공식적으로 사고를 통해 기사실명제 실시를 공표하면서, 대부분의 신문들도 이를 따르고 있다. 경향신문은 2002년 4월에 기사 실명제를 실시한다는 사고를 발표했고, 그 다음달 연합 뉴스 또한 “기사의 작성자를 밝히는 것은 그만큼 그 신문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이며 정도(正道)를 가려는 기자들의 뜻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국제 뉴스 기사 실명제 도입을 천명했었다.

 이처럼 언론보도에 있어서 기자 또는 필자의 이름을 명시하는 것은 그 기사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일이다. 신문 기사는 개인이 주고받는 사적인 편지가 아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증거자료 제시도 않고, 기자명도 밝히지 않은 채 일방적 감정을 노출하는 언론이라면, 이는 언론이 아니라 ‘광고 찌라시’에 불과하다. 더구나 동사가 2개인데 주어가 하나밖에 제시되지 않는가 하면, 한 문장이 20줄이 넘는 등 한글 맞춤법에 기준한 문장 작성법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그러면서 지금껏 주간지들은 언론사(言論社)라는 총칭에 뭍어왔다.

 하지만 콜로라도 한인사회는 점차 지식의 수준이 높아져 가고 있다. 이는 학력이 높다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시대를 역행하는 신문사의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어느 한국학교의 종강식을 간적이 있는데, 그때 한 교사가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한글을 배우려면 신문을 많이 읽으세요.” 참으로 난감했던 순간이었다.  포커스 신문사는 지난 2008년 <콜로라도 뉴스 섹션 기사 실명제>를 선언했었다.  인터넷에서 따오는 기사를 줄이고 콜로라도 뉴스 지면을 늘리겠다는 의지이기도 했다. 또한 실명제에 버금가게 중요한 것은 기자의 자질이었기 때문에 기사작성법과 기사 선택 방법, 증거자료 수집, 법원자료 요청 등에 대한 절차를 매년 세미나를 통해 교육하면서 기사의 질을 높혀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보충해야 할 것들이 많음을 잘 안다.

 언론계의 오랜 병폐는 추측 기사와 감정 기사였다. 그래서 신문사들은 기명 기사를 통해 이러한 병폐들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런데 콜로라도의 일부 신문은 고의적으로 기자 이름을 공개하는 것을 꺼려하면서, 한국어 문법도 정확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언론사로서 언제까지 이런 부끄러운 행태가 계속될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자신이 쓴 기사에 대해서는 실명을 공개하고, 한국어 문법을 정확하게 숙지할 때까지는 ‘언론사’라는 명칭사용을 부끄러워 해야한다.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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