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자리에 오르면 전임자에 대한 복수를 위해 칼을 갈면서 업무를 시작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우선 한국의 전직 대통령을 살펴보면 이해가 쉽다.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이 나란히 수의를 입고 법정에 서 있는 사진은 아주 유명하다.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후 김영삼 대통령은 '12.12 사태'는 '쿠데타적 하극상'이라고 규정하며 5.18 민주화운동을 재평가했다. 1심 법원은 전두환씨를 내란 및 반란의 수괴로 판시해 사형을, 노태우씨에게는 징역 12년 형량이 내려졌다. 2심에서는 전두환에 관한 형은 무기징역으로 감했다. 그러나 1997년 12월 대통령 당선자 신분이던 김대중이 국민적 대통합을 명분으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요청했고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받아들여 두 사람의 형이 면제되면서 추징금 납부 의무를 제외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다시 회복받았다. 이들이 시발점이 되어 한국에서 대통령은 재임기간을 마치면 감옥을 가야한다는 것이 당연한 수순인냥 얘기한다. 물론 잘못된 부분은 바로 잡아야 하지만, 대외적으로 자주 이런 모습을 보여준 탓에 한국 정치사는 갈등과 반목의 역사로 얼룩져 보인다.
미주 한인사회 또한 마찬가지인 듯하다. 시작부터 삐걱거리던 미주 한인회 총연합회 즉 미주 총연은 얼마전 일을 냈다. 총연은 지난 24대 회장 선거를 두고 초유의 부정선거 사태를 맞았었다. 지난해 5월 김재권 씨와 유진철 씨가 후보로 나선 회장 선거에서 김재권 후보가 투표에서 이겼지만 부정선거 논란에 휩싸여 법정싸움이 벌어졌다. 이후 법정이 유 후보의 손을 들어주며 지난해 11월 미주 총연은 유진철 호가 출범됐다. 그런데 회장직에 익숙해질 지금 시기에 엉뚱하게 한인회 인사들을 영구제명한다는 발표를 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정말 틀린 말이 아닌가 보다. 덴버에서도 한인회장과 임원진들은 자신들이 대단한 벼슬을 한줄 알고 몇몇 전직 한인회장들을 한인회에서 제명 시킨 일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제명에 관한한 총연보다 콜로라도 한인회가 선배 입장인 듯 싶다. 결국 제명당한 그들은 한인회의 반대파가 되었고, 다수를 보듬지 못하는 한인회는 자연스레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면서, 오늘의 유명무실한 한인회의 모습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제명을 시키는 것보다는 끌어안고 다독이면서 함께 가는 것이 한인사회에 득이 된다는 말이다. 왜냐면 제명이라는 결론은 극히 주관적인 기준에서 나온 결과이기 쉽기에 다수의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힘들다. 회장이라고 불려지고 싶다면 내 편이 아닌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미주 총연은 지난달 26일 LA 뉴서울 호텔에서 윤리위원회를 열고 제24대 회장 선거의 부정 선거 책임을 물어 회원 3명은 영구 제명을, 2명에게는 3년의 자격정지라는 어처구니 없는 처분을 내렸다. 한인회의 입장에서 제명당한 사람들은 한인회에 피해를 준 사람들로 그 이유가 뭉트그려지는데, 따져보면 회장 개인의 감정에서 발로된 일이다. 제명을 결정하는 것은 한인사회의 분열을 확정짓는 일이기에 신중을 기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총연사태는 유진철 회장이 김재권 후보측에 서있던 인사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부정선거를 방치한 선관위원장과 상대후보 선거운동에 관여한 사람들만 골라 제명시켰다. 그러나 유 회장 또한 떳떳하게 청렴한 후보가 아니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선거당시 유 회장 측은 정회원 회비 대납을 요구하고 총회에 참석한다는 구실로 항공권을 요구하고 향응을 요구받고 접대한 사실이 전혀 없을까. 그리고 이제와서 선관위를 부정한다는 것은 자신의 회장직을 부정한다는 뜻과 같다. 그렇다면 회장을 다시 선출해야함이 마땅하다.
이미 1년이 지난 선거를 놓고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자기 얼굴에 침뱉기이다. 필자는 사실 미주 총연에 별 관심이 없었다. 자기네들끼리 지지고 볶던 우리 덴버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개인적인 감정이 실린 보복성 제명을 발표하는 것을 보고 참으로 덴버 한인사회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제발 이제는 자기들끼리의 싸움은 그만하고 주변을 한번 둘러봤으면 좋겠다. 얼마전에 미주 한인회 서남부 연합회장의 취임식이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있었다. 유 회장도 참석했고, 그 때 제명 만은 안된다고 여러 조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 회장은 돌아가자마자 발표를 해버렸다. 재임기간 동안 취임식이 유일한 행사이고, 반대편 인사는 꼭 제명시켜야 하고,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것이 당연한 절차라고 여기는 한인단체라면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 미주 총연이면 미주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단체가 아닌가. 전 지역의 한인회에 모범이 되어야 할 총연에서 괜한 일로 불신과 정통성에 흠집을 내어 제살만 뜯어먹고 있다.
얼마나 많은 일들이 산재해 있는가. 예를들면 미국 매춘의 중심에 선 어글리 한인사회의 이미지 탈피에 힘을 쓰든지, 전미주 도서관에 한국 도서 섹션을 만든다든지, 아니면 이민비자 쿼터 확대를 위해 발벗고 나선다든지, 전미주 초, 중, 고교에 한국어 교과목 채택을 위해 힘쓴다든지, 미국 학생들에게 독도와 동해에 대한 올바른 표기법을 가르치는 방법을 고안하든지. 이렇게 많은 일들을 뒤로하고 언제까지 어리석은 행보만 계속할런지. 지금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이든지 벨 수 있는 센 칼을 지닌줄 알고 있지만, 이미 지성인들에게는 오이도 썰지 못하는, 무뎌진 칼날으로 인식된 지 오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