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원 살인 사건이나 오이코스 총기 사건과 같은 사이코패스 성향의 사건들을 접할 때면 그들에게 수치심은 거리가 먼 단어인 것만 같다. 제수 강간 미수 논란에 빠진 김형태 국회의원 당선자나 논문 표절로 결론이 난 문대성 국회의원 당선자의 뉴스에서도 수치심은 찾아보기 힘들다.

 ‘수치심’이란 단어는 그리 좋게 들리지 않는다. 얼굴에 숯을 놓은 듯한 화끈거림과 시선을 회피하고 자꾸 땅을 보게 되고,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들게 하는 단어다. 대부분의 육아관련 도서들은 아이를 칭찬해 주고, 수치심을 느끼지 않게 해주라고 말한다. 수치심은 매우 부정적인 감정이며 아이에게서 꼭 해결해 주어야 하는 감정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요즘 TV나 신문 지면에 오르내리는 많은 뉴스들을 접하면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부끄러운 일’이 무엇인지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2008년 LA에서 발생된 SAT 문제지 유출 사건, 2012년 1월 LA 인근 한 고등학교에서  컴퓨터 해킹으로 성적을 조작한 사건에는 한인 학생들이 관련되어 있었다. 모두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었다고 했다. 이런 학생들이 대학을 가면 어떻게 될까? 요즘 미국 대학가 주변에는 온라인으로 학생들의 과제물들을 대신 처리해주는 서비스가 성행이라고 한다. 이런 업체가 300개가 넘는데, 관계자들에 의하면 고객의 태반이 한인 학생들이고 나머지가 인도, 중국, 대만계 학생들이라고 한다.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이 칭찬의 부작용은 아닐까 싶다. 아이들은 과정은 상관없이 보기 좋은 결과만을 얻으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부모들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며 아이들이 가져온 결과에 대해서만 칭찬해왔지 정작 무엇을 칭찬해야 하는지, 깊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잘 배우지도 못했다. 칭찬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칭찬을 통한 평가와 조종이 문제인 것이다. 칭찬의 부작용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단어가 ‘야단 알레르기’다. 부모나 교사가 듣기 싫은 소리를 하면 의기소침해져서 펑펑 울거나 장난감을 던지거나 심한 경우 구토를 하고, 싫은 소리를 좀 들으면 공부든 취미활동이든 금세 포기한다. 전문가들은  부모의 지나친 또는 부적절한 칭찬 때문에 아이들이 실패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힘을 키우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수치심만큼 인내심도 사라져 간다. 일순간의 충동 때문에 일어난 많은 사건들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다. 한 사람의 잘못이 보도되면 사실 여부가 발표되기도 전에 인터넷이 들끓고 서명을 하고 안티 사이트가 등장한다. 조르는 아이의 요구를 즉각 처리해 주면 아이는 남의 입장을 이해하는 아량이 부족해지기 쉽고, 충동을 잘 참지 못하며 공격적이 되기 쉽다. 4~5세 때 인내심을 배우지 못하면 사회적으로 친구 사귀기도 힘들어진다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다.  워싱턴대 로버트 클로닌저 박사는 “끈기있는 사람들의 가장 큰 장점은 어떤 일을 시작했을 때  그 일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몰두한다는 것이다. 지속적인 칭찬은 항상 성공할 것이라는 자만심을 키워주고 쉽게 포기하게 만든다. 아이들에게 어떤 부분이 잘못됐고 그것에 대한 의견과 존중, 그리고 미래에 더 잘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은 자신이 일을 잘했을 때나 잘못했을 때에도 항상 칭찬 받기만을 기대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제는 결과보다 과정이다. 부끄러운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과 부끄러운 일을 했을 때 바로 잡는 법, 나와 타인에 대해 기다림을 배우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 안에서 아름다운 인격을 지닌 사람으로 성장해 가는 아이를 칭찬해야 할 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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