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년 달력이 마지막 한 장 남았다. 다사다난 했던 상투적 표현이 새삼스러운 한 해였다.
한국은 공격적인 정치를 펼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로 국가 전체가 갈등에 휩싸였고, 이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두 명의 대통령을 보내야만 했던 안타까운 한 해이기도 했다. 중반에는 북핵 실험 강행으로 한반도의 긴장이 극에 달하더니 급기야 서해 전 발발까지 가는 상황에 치닫기도 했다. 최근에는 세종시, 4대강 논란과 노조법 개정 문제가 뜨겁다.

미국의 올해는, 미 역사상 처음으로 선택된 흑인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한해 였다. 하지만 경제위기는 벗어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또, 폭넓은 이민개혁안을 주장했지만 각 주마다 차이나는 주법아래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이 심해졌고, 비이민비자 소유자들에 대한 배려도 딱히 나아진 것이 없어 그리 칭찬할 거리는 없다. 얼마 전 타임 지는 올해의 미국 뉴스에 경제위기와 건강보험 개혁을 둘러싼 대립, 아프카니스탄 전쟁을 꼽았는데, 특히 일자리를 잃으면서 시민경제가 무너진 것에 비중을 두었다. 이처럼 미국은 70여 만에 찾아온 최악의 경기침체로 실업률이 10%를 넘어선 상태에서 올해를 마무리 해야 할 것 같다.

유럽의 올해는 어떠했을까. 숨가쁘게 움직였다. 조만간 코펜하겐 기후 회의에서 탄소 감축의 실마리가 풀리면 그것도 대사건으로 기록되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이슈는 유럽 연합의 완전한 통합이 아닐까 싶다. 한국전쟁보다 더 긴 시간을 허비하고 인적, 물적 피해를 주고받았던 유럽 국가들이 정치적 통합을 이뤄냈다는 것은 대단할 일이다.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를 위해 공생하자는데 뜻을 모은 것이다. 이렇게 눈앞의 도전을 미래의 시각에서 해결하려는 의지가 갸륵하다. 통합되면 고쳐야 될 것이 너무 많아서 ‘기존의 해오던 것이 편한데 왜 바꾸려 드느냐고, 너희 나라만 좋은 일 아니냐’고 핏대를 세울 만도 한데 모두가 한발자국씩 물러났다.

이에 비해 한국은 좀 안타깝다. 최근 노조법을 둘러싼 접근방식을 보면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버는 사람은 소수이고 나눠먹자는 사람은 다수이다. 전체 노동자의 5%에도 못 미치는 거대 노조는 나머지 95%의 노동자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들이 진정으로 전체 노동자의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다면 그들의 기득권을 기꺼이 나눌 때 대표 노조단체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세종시와 4대강도 비슷한 맥락이다. 1970년대 초반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일부 지식인과 정치인들은 목숨 걸고 반대했다. 얼마 전 국회에서 4대강 회의가 열렸는데, 어느 의원이 책임지기 위해 실명을 남기자고 제안한 일이 있었다. 결국 의원들은 퇴장하고, 실명의 기록화는 없던 일이 되었다. 미래의 국민 전체 이익을 따지기 전에 사리사욕, 내 편, 내 표만 계산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정책이 결정되었으면 세부사항에 심혈을 기울일 생각은 않고 싸움을 위한 싸움, 시비를 위한 시비만 붙으니, 올해도 쉽게 풀릴 일임에도 불구하고 끼리끼리 모여 싸움만 하다 끝나는 것 같다.

덴버 한인사회의 올해는 어땠을까. 대성한 비즈니스도 없고, 왕성한 활동으로 한인사회에 크게 기여한 단체도 그리 많지 않다. 단지 안타까운 일은, 많은 한인 비즈니스가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식당, 세탁소, 노래방, 카페가 문을 닫고 심지어 보험, 융자, 부동산업 관련자들도 전업을 많이 했다. 그만큼 한인 비즈니스 계에도 변동이 많았다는 얘기다. 7년 전, 덴버에 와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경기가 좋지 않다”는 푸념이었다. 그런데 이 말은 이상하게도 매년 들어왔다. 올해는 확실하게 최악의 경제상황임이 피부에 와 닿아 아예 “좋지 않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면서 그나마 지금보다 경기가 좋았던 지난 몇 년 동안에도 습관적으로 내 뱉었던 그 말을 반성하고 있다. 그리고 2009년을 정리하면서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올해가 이 말을 하는 마지막 해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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