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으려고 사무실을 나가다가 반가운 손님을 만났다. 덴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비지니스를 하시면서 그 동네에 갈때마다 끼니를 얻어먹고, 올 여름에는 제대로 맛나는 상추를 얻어 먹어서 늘 풋풋한 인정을 느끼는 분이다. 내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서 만났으니 나의 텃세권에서 만난 것이다. 하필이면 시간이 여유롭지 못하여 간단한 분식으로 점심을 같이 하게 되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몇 달 전에 차량등록이 만료된 지인의 차를 끌어서 옮기다가 적발되어 딱지를 받았고, 그 때문에 그분이 계시는 동네 가까운 곳의 법원에 가려던 참이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낮도 아닌 한 밤중에 끌고 가는 차를 경찰이 뒤에서 보고 차량등록 기간이 만료되었다는 것을 알아보고 적발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분 역시 우연의 사건에 대한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밤에 좀 도둑이 들었다가 도망을 가는 순간 순찰차가 모퉁이에서 회전하면서 그 좀도둑의 수상한 행동을 보고 바로 체포했다는 일화다. 어쩌면 그 순간에 순찰차가 그곳의 모퉁이에서 회전을 하다가 좀도둑이 달아나는 것을 보게된 것일까하는 신기한 생각이 들었던 에피소드였다. 그렇지만 그 분은 막상 그 사람에 대한 사법처리를 위하여 법원에 출두하라는 통보를 받았지만 법원에는 가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허름한 분식점에서의 점심식사 분위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커뮤니티의 보호를 위한 개인적인 비용이니 어쩌니 하면서 법원에 갔어야 한다고 짧은 열변을 토했다. 우리 각자가 커뮤니티의 보호를 위하여 요구되는 그와 같은 개인적인 비용과 희생을 거부하면, 결과적으로 초래되는 사회적인 비용은 상황에 따라서 어마어마 할 수도 있다는 여전히 분위기에 맞지 않는 말을 이어갔다. 15세에 불과한 그 청년이 그와 같은 범죄에 대한 처벌과 교육을 받으므로 미래의 더 커다란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모호한 주장도 했다. 결정적인 증인이 출두하지 않아 처벌이 무산될 경우 그 청소년의 범죄행위는 계속 담대해지고 심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 커뮤니티가 공동으로 부담해야 될 사회적 비용은 대단히 심각하게 될 수도 있다는 순간적인 생각도 이야기했다.

요즈음 같이 경기가 고꾸라지는 그래서 쌩쌩한 찬기운이 느껴지는 불황 속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한달 한달의 생계와 앞으로의 생활대책에 급급한 현실에서, 거창하게 사회보호를 위한 개인적 비용의 부담을 언급하는 것은 내가 봐도 썩 어울리지 않았다. 언제부터 내가 지역사회의 커뮤니티를 위했다고 술자리도 아닌 대낮의 분식집에서 그런 오징어와 함께 안주로 씹어야 할 수다를 늘어놓았는지 생각해보면 오랜만에 만난 그분이 그만큼 편하고 부담없이 친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런데 그분이 법원에 가지 않은 이유는 여러가지 중에 무엇보다도 영어가 불편하기 때문에 법원에 가기가 꺼려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말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법원에 가봤자 영어가 안되므로 어차피 제대로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앞을 가렸던 것이다. 점심을 마치고 바로 무등록 차량에 보험증없이 운전하다 받은 딱지를 처리하기 위하여 한 시간 거리의 법원을 달려갔다. 그 동안 법정통역 때문에 법원에 간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막상 내 자신의 일로 법원에 가기는 처음이었다. 거의 30분 이상을 기다려 검사가 내 이름을 불렀고, 검사실에 들어가서는 불과 5분여 만에 간단히 일이 끝났다. 검사는 해당 위반사항에 대한 법정양형을 설명했고, 곧 나는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등록증과 보험증서 등 증빙서류를 제시하였다. 검사는 곧 바로 케이스를 기각처리 하였다. 그리고 나서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려서야 다시 내 이름이 불렸고 기각행정처리가 되었으니 가도 된다라는 짤막한 한 마디를 듣고 법원을 나와 돌아오기까지 또 한 시간의 운전을 해야했다. 생각해보면 실제로 10분도 안되는 시간에 일은 종료되었지만 기다리는 시간과 운전시간을 포함하면 3시간 반 이상 들어간 것이다. 나 자신의 일이 아닌 타인의 통역을 위해서 갔더라면 3시간에 대한 서비스 비용을 청구해야 할 일이었다.

막상 일을 한 시간은 10분도 안 되는데 전체 소요시간은 그렇게 걸린 것이다. 영어를 못해서 통역을 해야되는 상황이라 했다해도 20분 정도밖에 안 걸렸을 것이다. 이처럼 아주 간단한 일때문에 법원에 통역을 갈때마다 느꼈던 안타까움은 영어를 조금만 구사하면 당사자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케이스를 통역하고 그에 대한 통역비를 청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안하고 안타깝더라도 그렇지만 나의 시간은 사라졌으니 어쩔 수가 없다.

영어를 해야되는 이유로 굳이 커뮤니티의 보호를 위한 개인적 비용의 부담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생각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자신이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간단한 일들을 스스로 해결해 나가겠다는 자립생존이라는 명분은 염두에 둘 만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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