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린 행복찾기
재작년 여름, 베트남을 여행하면서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들 중 하나는 논 한가운데 자리잡은 묘지들이었다. 쌀농사를 많이 짓는 베트남은 어디를 가나 물이 가득 찬 논에 벼가 자라고 있었는데, 이 논 가운데 을씨년스럽게도 무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풍수지리적으로 묘가 들어서는 자리에 수맥이 흐르거나 물이 있으면 자손이 흉할 것이라고 해서 되도록이면 양지바르고 마른 자리에다 묘자리를 쓰곤 하는데, 베트남은 아예 물이 가득한 논에다 묘를 쓰는 것이었다. 물 속에 반쯤 잠긴 무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추워졌다. 아무리 더운 나라라고 하더라도 무덤속에 묻힌 상태에서 물에 둥둥 뜬 채 썩어가는 시체의 모습이 상상되고, 그 시체 썩은 물에서 자라는 쌀이나 쌀로 만든 쌀국수를 우리가 수입해서 먹는다는 생각을 하니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또 베트남이 저렇게 지지리도 못사는 것이 조상들의 묘자리를 잘못 써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날 하노이의 밤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상가집을 지나치게 되었다. 깃발을 세우고 환하게 불을 밝혀놓은 상태로 문상객들이 음식을 먹으며 왁자지껄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한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인은 할아버지였는데, 가족들은 흰색 상복에 흰색 머리띠나 허리띠를 두르고 있었고, 며느리로 보이는 여성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호상이었는지 가족들은 물론 문상객들도 흐느끼거나 우는 사람은 없었고 간간히 유쾌한 웃음도 들려왔다. 베트남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집에 사람이 죽었다는 깃발을 세우고 상주가 부고를 돌린다.
부고를 받고도 오지 않으면 그것은 의절 행위로 간주된다. 보통 3~5일장을 하는데 문상객은 한국처럼 부의금을 들고 조문을 온다. 부의금은 본인이 보는 앞에서 돈을 세고 부의금에 따라 접대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즉 부의금이 많으면 방안으로, 적으면 마당에 쳐 둔 천막으로 모시는 것이다. 베트남은 중국의 유교사상의 영향을 받아 장례 풍습이 염에서부터 매장에 이르기까지 우리와 매우 비슷하다. 부모가 숨을 거두면 곡을 하고 흰색 수의로 갈아입히고 염을 한다. 염을 할 때는 바른 자세로 시신을 뉘이고 입에는 쌀, 동전, 금 등을 넣는다. 검정칠이 된 관 아랫 부분에 바나나 잎을 깔고 시신을 눕힌다. 발인을 할 때는 한국에서처럼 고인은 꽃상여를 타고 여러 명의 젊은 청년들이 어깨에 메고 간다. 만약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사망한 경우, 집으로 시신을 들이지 않고, 장례식장에서 장의사의 도움을 받아 장례를 치른다.
또 호상인 경우, 전문 장례밴드와 같은 공연팀을 불러 장송곡이 아닌 신나고 경쾌한 음악을 연주하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인도한다. 조금 촌스럽다 싶은 유니폼의 시골 중학교 밴드부 정도의 실력을 갖춘 관악단이 장례 행렬을 앞장서서 종이로 만든 모조 돈을 마구 길에 뿌리며 장례길을 떠난다. 베트남은 참 못 산다. 그러나 베트남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 않고 오히려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 많은 것을 가진 우리들은 베트남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큰 집에서, 훨씬 더 많은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살면서도 참 웃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고 보면 행복의 척도는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만족하고 살아가느냐 인 것 같다. 신나게 뚱땅거리며 장지로 떠나는 베트남인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그들은 죽음이 또하나의 시작임을 이미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