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필자가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공포증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선천적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극복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이 필요했다.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였던 것 같다. 바닷가에 수영을 하러 갔던 나는 늘 오빠의 놀이 대상이었다. 모래사장 위 흩어지는 파도 거품의 끝자락에 발을 담그고 앉아있던 나는 오빠의 손에 이끌려 바다로 나갔다. 까만 색의 커다란 고무 튜브에 매달려 한참을 바다로 나갔는데, 장난끼가 발동한 오빠는 수영을 할 수 있는 경계선인 하얀 스티로폼 공에 나를 앉혀 두고 튜브를 끌고 가버렸다. 발이 닫지도 않는 바다에 그렇게 한참을 있고 난 뒤부터는 물이 무서워졌다. 그런 후 오랫 동안 내게 바다는 바라보는 대상이었지 뛰어들어 놀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살면서 많은 도전이 있었고 그때마다 하나씩 무언가를 일궈나가는 모습에 스스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날 갑자기 수영을 못한다는 사실이 일생 중 누릴 수 있는 한 가지를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도전하기로 했다. 벌써 10년전 일이다. 수영강습 첫날 스포츠 센터로 향하던 나에게 수영은 즐겁게 배우는 취미활동이 아닌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다. 머리를 물 속에 넣는 것이 죽을 것 같이 무서웠다. 그 공포감은 수영을 배우는 내내 스트레스였지만 나의 이상한 오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침에 강습을 받고, 저녁을 먹은 후에 연습을 하러 갔고, 때로는 비디오 카메라로 수영하는 모습을 담아 자세 교정까지 하는 모습을 본 남편은 무슨 대회에 출전할 계획이냐며 놀렸다. 수영할 때마다 괴로워하면서 이렇게까지 하는건 필요 이상의 자학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물에 대한 무서움을 극복하고 싶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필자에게 수영을 잘 한다며 가르쳐 달라고 할만큼 수영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물이 무섭다. 그렇지만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그 무서움에 친숙해지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또다른 포비아도 극복했었다. 오래전 이야기다. 이집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아주 편안하게 저녁식사를 즐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면서 식판 위에 올려져 있던 음식이 날아가고, 산소 마스크가 내려지고, 비상등이 켜지고, 실내등이 꺼지면서 비행기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승무원도 머리를 숙이고 주의방송 조차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밀려오면서 극심한 정신적 패닉 상태에 빠진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혼자 떠난 여행이었기 때문에 손 잡아줄 사람 하나 없다는 사실이 더 공포스러웠던 것 같다. 그 이후 비행기, 지하철, 버스를 타는 것이 두려워졌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던 나는 방학 때마다 집에 가는 것이 큰 고역이었다. 할 수 없이 차를 하나 뽑았다. 내가 쉴 수 있을 때 쉬고, 내릴 수 있을 때 내리기 위해서였다.
첫 아이를 낳고도 알 수 없는 공포, 포비아에 잠깐 휩싸인 적이 있었다. 의사는 심한 산통과 극심한 책임감에서 오는 산후 우울증이라면서 약물 치료를 권했다. 일주일 정도 약을 먹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른해지는 몸과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오기가 발동했다. 약에 의존하고 싶지 않아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생각나는 모든 요소들을 차근차근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하나씩 적어가며 이겨냈다. 의사는 내가 사용한 방법을 자신의 치료법에 사용하고 싶다고 했다.
고소 공포증을 이기기 위해 패러 글라이딩을 탄 적도 있다. 처음에는 평지에서, 한달 후에는 50미터 높이의 구릉에서 처녀비행을, 6개월이 지나서는 800미터 이상의 산 정상에서 뛰어내리면서 터질 것 같은 심장소리를 들었다. 1년이 지나고 6년이 지난 즈음에는 이 심장 소리는 패러 글라이딩 자체를 즐기는 짜릿함으로 변해있었다. 공포감을 즐기며, 높이의 벽을 극복하는 순간이었다.
신문사를 하면서 새로운 공포증이 생겼다. 바로 사람 공포증이다. 진짜 무서워서가 아니라 상대하기 싫어서 피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필자도 인간이다 보니 솔직히 꼴보기 싫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본다면 아무리 잘해주어도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잘못을 자기만 모르는 사람, 종교를 비지니스적으로 이용하는 사람, 평소엔 돈 많은 척 떠들다가도 빚쟁이만 보면 한없이 작아보여야 하는 사람 등이다. 또, 신문사 입장으로 본다면 전화 예의없는 사람, 잘못된 점을 지적하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신문사 욕을 하고 다니는 사람, 그리고 부정부패에 익숙한 업주 등이다.
사실 포커스 신문사에는 독자들의 제보가 많이 들어온다. 그래서 칭찬할 만한 제보가 있으면 작은 일도 마다않고 달려가 취재했다. 하지만 그 반대의 일은 사실 조심스럽다. 좁은 동네이다 보니 기사화 이전에 최대한 개선점을 찾아보자는데 중점을 둔다. 그래도 '아니다'라는 판단이 들면 기사화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당사자들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때부터 포커스는 그 당사자들 몇몇에게 도마질을 당해 왔다. 하지만 그 도마질에 힘을 보태지 않는 독자들이 훨씬 많기에 지금의 자리에 섰다. 그래서 지금 가지고 있는 '사람 공포증'은 고치지 않을 생각이다. 신문사에서 해야할 일은 나쁜 사람을 '나쁘다'라고 독자들에게 알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