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창가에 서면 록키산 자락이 보인다. 맑은 날의 석양은 매일 새로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흘러가는 구름을 따라 어느 하루도 같은 풍경이 없다. 눈 쌓인 모습도, 독립기념일을 기념하는 희미한 불꽃들도, 계절을 따라 변하는 색들도 늘 나에겐 하나의 안식과 같다. 동쪽에서 운전을 하고 내려올 때면 병풍처럼 둘러선 산들을 보며 아이들과 함께 늘 탄성을 지르곤 한다. 그런데 만약 이 산에 공군기지가 들어온다면, 그래서 이 풍경을 더 볼 수 없다면...?
지난 7일 새벽, 제주 강정 마을에서는 야당 정치인, 평화 활동가, 시민단체가 모여 새벽을 지새웠다. 지난 6일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해군이 구럼비 시험발파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차디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밤을 지새워서라도 그들이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은 벌써 여러해 몸살을 앓아왔다. 5년 전부터 시작된 해군기지 건설 때문이다. 원래 해군기지로 다른 두 곳이 언급되고 있었기 때문에 강정마을 주민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작스럽게 밀어부치기 식으로 진행된 해군기지 유치 신청으로 인해 마을의 평화는 산산조각이 났다. 길면 5년 정도 걸리는 부지 선정이 한 달 만에 정리가 되고, 절대보존지역이었던 곳은 단 3일만에 주민 동의도 없이 축소, 해제되었다. 한나라당은 이 사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고, 해군당국은 주민들 대다수가 찬성했다면서도 자세한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다. 마을은 찬성과 반대, 또 반대하는 주민과 군경찰로 인해 대립과 갈등의 연속이다. 해군의 발파보도가 나면서 이제 갈등구도는 국민 대 군경처럼 보인다.
구럼비 해안은 화산 폭발로 바다로 흘러간 용암과 바다에서 솟아난 바위가 한덩어리로 어우러진 풍광을 자랑하는 희귀 지형의 해안이다. 남방큰돌고래의 서식지이며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 보존지역이다. 환경단체들은 이 해안이 용천수(涌泉水)가 솟아나오는 바위습지대로 제주 올레길 7코스에 위치하는 등 보존가치가 높은 곳이라고 주장한다. 4년 전, 한 사람의 어이없는 방화로 소실되었던 남대문은 현재 복원중이다. 오랜 역사의 숨결을 느끼기에는 미약할지라도 복원해서 다시 볼 수 있다니 그래도 다행이다. 그러나 이 천혜의 자연경관은 어찌할 것인가. 폭파되면 사라져버리는 바위는 대체 어떻게 복원해야 한단 말인가.
제주가 이렇게 몸살을 앓는 동안 도지사와 국무총리, 대통령 내외는 제주도가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되는데 열을 올렸다. 이를 주최한 단체는 스위스의 한 여행회사가 만든 비영리재단이다. 그러나 몰디브는 제주도와 경합을 벌이던 중 주최측이 85만 달러라는 거금을 요구해, 이것을 사기로 보고 후보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반면 우리는 지난 11월 선정된 것을 축하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자연은 파괴하면서 외국에서 받은 타이틀 하나에 기뻐한다. 서울 한복판의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하천을 복원했다고 자랑스러워하며 기뻐하던 나라가, 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우기 위해 바위 사이로 다이나마이트를 집어넣고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밤을 지새우며 잠 못드는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