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목요일 아침 8시부터 오로라 법원에서는 전 뉴스타 부동산 지사장인 박헌일씨를 상대로 형사 재판이 진행됐다. 장장 12시간이 넘게 걸린 법정공방에도 불구하고 박헌일씨가 유죄라는 평결은 받지 못했다.
아직 재판의 끝은 모를 일이지만, 우선 몇 달 전 콜로라도주 한인회장이었던 박준서씨가 신문사로 보낸 사건 경위를 다시한번 살펴보자. 콜로라도주 한인회는 타주에 사는 한 한인이 콜로라도에서 부동산을 매입하려는 중 뉴스타부동산의 박헌일씨로부터 사기를 당했다는 전화를 받았고, 한인사회에 더이상 이러한 일이 발생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전 한인회장 몇몇이 모여 박헌일씨의 부동산 브로커 자격을 비판하는 편지를 작성해 콜로라도주 부동산 위원회, 뉴스타 부동산 본사, 뉴스타 부동산 덴버지사 등으로 보냈다고 한다. 이에 한국에 있던 박헌일씨는 화가 나서 자신을 비방한 편지를 보낸 바비킴 전 한인회장 등에게 전화를 했고, 이 와중에 박헌일씨가 협박성 말을 했다는 이유로 그들은 박헌일씨를 상대로 민사 및 형사 소송을 걸었다. 민사 재판의 원고는 바비 킴씨와 박준서 전 한인회장이고, 형사재판에서 이들은 증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그들이 사기라고 말했던 거래는 박헌일씨에 따르면 어떠한 금전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고6개월이 넘도록 허송세월만 보냈다고 했다. 부동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한인회 측은 사기를 당했다는 타주 사람의 말에만 근거해 박헌일씨를 비방하는 편지를 이곳 저곳으로 보냈다. 이 편지가 사건의 시발점이다.
지난주 재판장에서 검사는 바비 킴씨가 증거로 제출한 음성 메시지를 계속 되풀이하면서 박헌일씨가 확실한 유죄임을 강조했다. 박헌일씨는 총19번의 음성 메시지를 남겼는데, 그 메시지의 내용은 대부분 비슷했다. 술 취한 목소리로 비슷한 어휘의 욕설들과 덴버 가면 가만히 안 놔두겠다, 죽여버리겠다 라는 내용이 주다. 그리고 간혹 가족들까지 거론한 내용도 있다. 이렇듯 검사가 미국에서는 절대 통용될 수 없는 ‘죽이겠다’라는 말을 녹음한 확실한 증거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박헌일씨가 유죄 평결을 받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변호사의 능력이 출중했고, 또 한가지는 배심원들이 박씨가 이렇게까지 욕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동기를 충분히 이해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한인들을 상대로 고소를 일삼아온 바비 킴씨, 이를 착실하게 내조해 온 박준서 전 한인회장, 개인감정에 휩싸여 비난 편지를 작성하는데 합세한 전 한인회장들, 이들이 주장하는 정당성이라는 것을 배심원들도 이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나쁜 말을 했으니 가해자라는 것이 확실한데, 피해자가 원인을 제공했으니 배심원들도 고민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실 이 사건은 입건된 것 자체부터가 의아하다. 법원까지 갈 케이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사건 개요는 간단한 것이 아닌가. 본인을 욕하는 편지를 직장과 그와 관련된 주요 기관들에게 보냈고, 이를 따지려고 했는데 전화를 일부러 안받으니까 술김에 욕설을 남긴 것이다. 한국 사람은 ‘죽는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민족들이다. 배가 고파 죽겠다, 다리가 아파 죽겠다, 머리가 아파 죽겠다. 보고 싶어 죽겠다 등. 이미 한인사회가 자리를 잡은 타주에서는 ‘죽여버리겠다’라는 말을 한인들의 일상 용어 혹은 화가 났을 때 내뱉을 수 있는 약간의 속어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늘고 있는 추세다. 이는 한인 인구가 늘면서 미국 법정에서도 우리 한인들의 문화적인 차이를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 또한 이 말에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심한 것은 한인사회에서 30여년을 함께 살아온 이들이, 한국어 중에 가끔 존재하는 부조리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이, 이를 가지고 법정에 서겠다고 마음을 먹은 일이다. 더구나 사건 당사자를 비롯해 검사, 변호사, 증인, 통역까지 한인이었다. 이런 일로 미국 판사와 배심원의 심판을 받아보겠다는 생각은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이런 협박성 멘트로 박헌일씨가 받을 수 있는 벌은 많아봤자 벌금 2백달러 정도와 1년 집행 유예가 고작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씨가 간단히 유죄를 인정하지 않고, 재판을 이어가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유는 툭하면 고소질 해온 사람들이 다시는 이런 자질구레한 일로 고소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필자는 덴버에 와서 부끄러웠던 순간이 두번 있었다. 한 번은 한인회관을 매각해라는 판결을 들었을 때였고, 그리고 지난주 있었던 법정 공방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두 번의 순간마다 공통된 인물들이 등장했다. 이제 정말 한인사회 망신을 그만 시켜주길 간절히 바란다. 지긋지긋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