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이런저런 전화를 많이 받는다. 그중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어느 업체가 가장 좋은가에 대한 것이다. 예를 들면 어느 보험회사 브로커가 가장 믿을만 한가, 아니면 어느 식당이 가장 추천할 만한가, 혹은 어느 물리치료 병원이 좋은가 하는 것 등이다. 더러 대답하기가 난감한 때도 있는데, 전화를 걸어온 독자들이 대답을 요구하는 요령이 늘어서인지 인간적으로 말해달라며 조를 때가 그렇긴 하다. 그렇다면 과연 필자가 자신있게 추천할 만한 업소가 몇개나 될까.
지난해 최악의 업체를 선정하겠다는 공고를 낸 적이 있다. 그후 몇 달동안 지인들로부터 상반된 의견을 들었다. ‘용감하다’와 ‘그렇지 말아라’하는 의견으로 좁힐 수 있다. 속았던 사람에게 또 사기를 당하고, 같은 사람에게 네 번이나 당해서 돈 날리고 주위로부터 신용까지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집의 문고리만 삐그덕 거려도 같은 업자에게 연락을 하는 이들도 있다. 포커스가 최악의 업체를 선정하겠다는 의도는 악덕업자와 계속 관계를 가지겠다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더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충분한 검증과정을 거쳐 조사가 진행됐다. 10명 혹은 5건 이상의 피해사실 증언, 업체 등록 상태, 업주 라이센스 보유 상황, 그리고 취재과정에서 얻은 약간의 개인적 소견이 포함되어 최악의 업체는 지난 연말 이미 선정되어 발표만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발표를 못하고 있다.
10여년전 필자는 동서양이 현존하는 영원한 제국, 터키를 여행하기 위해 2주정도의 일정을 잡았다. 이스탄불에서 내려 가장 가보고 싶었던, 기괴한 암석 도시 카파도키아를 가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카파도키아에서 이틀을 보내고, 고대 로마시대부터 휴양지로 잘 알려진 파무칼레에서 3일을 보냈다. 원래 1박을 계획했지만 너무 좋아서 여행일정을 늘렸던 것도 이 파무칼레라는 도시 때문이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가는 곳마다 터키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었다. 이런 황홀함에 휩싸여 발길을 옮겼던 곳이 차낙칼레였다. 그러나 차낙칼레에 도착하면서 필자의 흥분된 터키 여행은 답보 상태를 맞았다. 트로이 목마가 있는 곳이다. 그냥 보면 나무로 만든 커다란 말 장난감처럼 보인다. 이것이 어떻게 유명한 유적지의 리스팅에 올라 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허접하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겠지 라는 의심이 들어 이리저리 주변을 살펴봤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이후 후배들이 터키 여행 가이드를 요청해오면 차낙칼레는 가지 말라고 했었다.
난공불락의 요새 ‘트로이’를 점령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던 그리스군은 성문을 열지 못해 번번히 공격에 실패하다가 어느 날 밤 대형 목마만을 덩그러니 남겨두고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에 트로이군은 남겨진 대형 목마를 전승기념품으로 생각하고 성안에 끌어다 놓고 밤새 축제를 벌이다 골아 떨어졌는데, 이 틈을 이용해 목마 속에 들어있던 그리스의 병사들이 성문을 열어 결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고대 도시 트로이와 목마에 담긴 이야기다. 그리스와 트로이 사이에 벌어진 10년간의 지루하고도 소모적인 전쟁을 하룻밤 사이에 끝낸 것은 오디세우스가 만든 목마 때문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해를 끼치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위험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트로이 목마를 컴퓨터 해킹을 목적으로 전송하는 프로그램으로 지칭하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라 짐작된다. 그 유구한 역사와 의미에 비하면 트로이 목마의 모습은 너무나도 허술했다. 하지만 트로이 목마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성장시킨 시와 지역주민, 고고학자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허술한 겉모습의 목마에 아랑곳 하지 않고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여기를 찾는다.
이듬해 덴마크 코펜하겐을 갔을 때도 트로이 목마와 같은 비슷한 느낌의 명소를 갔었다. 그 유명한 인어공주 상이다. 알다시피 인어공주 상은 안데르센 동화 인어공주를 테마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동화가 왕립극장에서 상연될 때마다 발레리나 엘렌 프리스가 인어 공주역을 맡았고, 이를 계기로 그녀가 인어공주상의 모델이 되었다. 이후 그녀는 공주상 조각을 맡은 조각가 에릭센의 부인이 된 실화는 잘 알려져 있는 스토리이다. 하지만 인어공주 상은 유명세와는 달리 너무나도 부실했다. 이를 보기 위해 카스텔레트 요새에서 해안을 따라 1시간여 동안을 걸어간 노력이 아까웠을 지경이었다. 80센티미터 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동상을 보기 위해 바다를 건너 왔다는 허탈감은 좀처럼 가시지가 않았다. 그러나 몇 차례나 훼손되어 복구의 과정을 거치고도 사라지지 않고 덴마크의 명소로 꼽히는 이유는 덴마크의 자긍심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붐비는 이유도, 덴마크에 가면 인어공주 상을 꼭 봐야 한다는 일정을 짜게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이 지역을 대표하는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1백 년간 코펜하겐의 바닷가를 지켰던 인어공주는 세계적으로 덴마크의 긍지로 인정을 받아 2년전 상하이 엑스포를 위해 사상 처음으로 해외 출장 길에 올라 화제가 됐었다. 덴마크의 깨끗한 바다에 위치한 인어공주상을 상하이에 전시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중국에 환경보호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코펜하겐시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최악의 업체 발표를 미룬 것은 남아있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문에 보도되어 회생 불가능한 업체가 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한번 더 기회를 주고 싶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업체는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업주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크고 웅장한 무엇이 아니어도 좋다. 허접한 자태라도 좋다. 우리가 긍지를 가지고, 의미를 불어넣어 준다면 식당도, 미용실도, 마트도, 다른 비즈니스도 덴마크의 인어공주 상과 같은 명소로서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올해는 최고의 업체 선정을 고려해볼 참이다. <편집국장 김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