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은‘쇤다’는 동사를 이끌고 다닌다. 다른 데서는 흔히 쓰이지 않는 동사를 따로 거느릴 정도로 이 명절은 특별하다. ‘쇠다’라는 말은 해(태양)의 원말인 ‘솔’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니‘설’이라는 명사에서도, ‘쇠다’라는 동사에서도 힘차게 떠오르는 새로운 해를 맞는 기운이 담겨 있는 셈이다. 이제 설이 코앞이다. 신년 초부터 ‘용의 해’라고 법석을 떨었지만, 아시다시피 12간지는 음력으로 따지는 법이니 진짜 ‘용의 해’는 구정이 지나면서 시작된다. 그래서 2012년 1월1일에 태어난 아기를 두고 용띠라고 각계에서는 수선을 떨었지만 엄밀히 따지면 용띠가 아니다. 여하튼 올해는 용띠해이고, 해의 시작은 구정부터이다.
12간지 중에서 유일하게 상상의 동물인 용은 예로부터 상서로운 기운을 뿜어낸다고 여겨져 왔다. 그래서일까, 유독 올해는 새로 맞는 해에 대한 기대가 큰 것 같다. 한국에서는 용의 기운이 넘치는 곳을 찾아다니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용은 상상의 동물이기 때문에 진짜 용의 자취가 있을 리 없다. 그 기운이 서린 곳을 찾아간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소원이 성취될 리도 없다. 하지만 상서로운 기운을 뿜어내는 곳을 찾아 출발의 마음을 다지는 의미로 정리한다면 용의 거처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에 공감이 갈 듯하다. 필자 또한 각오를 다지며, 올해의 출발선상에 선 모든 동포들에게 잊지 말아야 할 딱 한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동부 아프리카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케냐는 국토의 대부분이 사바나 초원으로 이뤄져 있다. 우리에게 ‘동물의 왕국’으로 잘 알려져 있는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의 대초원에는 지금도 사자와 얼룩말 등 수백만 마리의 야생 동물들이 살고 있다. 1974년 미국의 고인류학자가 케냐 북동부 호수 주변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320만년 전 인류의 화석, ‘루시’를 발견했을 때 케냐 사바나의 대초원은 수많은 생명들의 터전이며 인류 진화의 토대였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이처럼 우리에게 동물의 왕국과 사파리 같은 자연의 원시적 생명력이 넘쳐나는 땅으로 각인돼 있는 케냐에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원시 유목을 하는 마사이 전사 허리춤에는 이제 휴대전화가 칼을 대신하고 있으며, 케냐 성인의 대부분이 휴대전화를 소유하고 있는 등 첨단 정보통신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다. 금융거래의 70%가 휴대전화를 통해 이뤄진다. 이런 동물의 왕국에서도 휴대폰이 일상화되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휴대폰은 이제, 설겆이를 할 때 사용하는 트리오처럼 전세계인의 생활용품이 되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아프리카에까지 상용화된 휴대폰에 힘입어 우리의 인사(人事) 시스템도 크게 바뀌었다. 텍스트나 혹은 화상통화 같은 것으로 말이다. 연필심 끝에 침을 묻혀가며 하얀 백지 위에 글자를 꾹꾹 눌러 쓰고 난 뒤, 우체국으로 달려가 편지를 보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휴대폰으로 내가 보낸 텍스트를 잘 받았다는 답변을 1분내에 받을 때마다 정말 신기하다. 크리스마스 때도 일명 ‘집단 메일’이라는 것을 이용해 자신의 전화기내에 저장된 사람들에게 일괄적으로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빠르게 자신의 안부를 전할 수 있다면 그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 그옛날 종이편지에 비해 다소 낭만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휴대폰으로 나름 상형문자를 이용해 감정을 전달할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인 부분이 많다.
이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텍스트나 전화를 사용해 안부를 물으면 된다. 문제는 직접 만났을 때이다. 특히 우연히 만났을 때 인사하는 방법은 무척이나 서툴다. 목에 깁스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어른을 보면 당연히 인사를 해야 하고, 비슷한 연배를 만나더라도 악수를 청해 안부를 물으면 되고, 안면있는 사람에게는 눈인사라도 보내면 서로 기분 좋다. 그런데 먼저 아는 척을 하는 것을 자존심이 상하는 일로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상대방이 먼저 아는 척 하길 기다리면서 눈을 흘깃흘깃하다 어색해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 내가 더 큰 직장에서 일한다는 이기적인 이유로 오랫동안 보아 왔던 이웃 어르신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법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경쟁사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손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봐도 못 본 척, 옆자리에 앉아도 절대 모른 척을 한다. 평생 큰 직장이나 혹은 경쟁사에서 일할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야 주변을 둘러보고 인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인사(人事) 라는 것은 한자 뜻 그대로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기에 인사라는 한자어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우리나라는 유교가 유입된 이래 숭유(崇儒)사상이 뿌리내려 전통적으로 예절을 중시해 왔다. 그래서 그 어느 나라보다도 인사법에 까다로운 격식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특히 슬플 때나 기쁠 때면‘먼저’ 자원해 절을 하고 정중한 인사말을 건네는 아름다운 풍속이 이뤄져 왔다. 그래서 인사만 잘해도 밥은 얻어먹고 산다고 했다. 인사를 먼저하는 것은 절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올해 실천해야 할 한가지로 ‘인사 먼저 하기’를 건의한다. 이 좁은 콜로라도 한인사회에서 이유없이, ‘인사 안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혀 구설수에 오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편집국장 김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