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장로교회 담임 최요셉 목사

 집사이지만, 목사보다 남을 더 이해와 위로와 용서하여 주고 더 이타적으로 행동하며 목사보다 하나님께 더 순종하고 충성한다. 위기와 위험을 당할 때는 더 용기가 있고 심지어 대신 죽기까지 하신 집사 한 분을 날마다 존경하며 본으로 삼고 있다.  그 분은 비둘기같이 온유하고 사도바울과 같이 담대하고 여호수아와 갈렙과 다윗과 같이 용맹스러우며 미련한 양들을 위하여 대신 고난과 죽음을 당하기까지 하신 진실한 목자이기도 하다.  그 분의 이름은 스데반인데, 십자가를 지고서 신앙을 지키고 새사람으로 살면서 주님을 따른다고 하는 목사가 그의 흉내를 내기가 쉽지 않아 스승으로 삼을 만한 집사이다.  그래서 주님과 나와는 더욱 큰 차이가 나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게 되고, 주님이 아직도 나의 짐을 대신 지고 가심을 느끼게 되며, 주님의 은혜와 긍휼하심이 날마다 크게 임함을 고백하게 된다.
 
  스데반 집사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 선하심, 사랑과 신실하심을 가장 받지 못한 사람이기에 끔찍하게 돌에 맞아서 죽은 것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와 같은 것들을 자신의 원수들에게 베풀 정도로 넘치도록 풍성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은혜와 긍휼함, 선함, 사랑, 신실함은 각각 무엇인지 살펴 보며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은혜는 누군가가 구하지 않더라도 그가 필요한 것을 알고서 조건과 대가없이 베푸는 것인데, 빛과 산소와 비가 가장 큰 예이다. 은혜가 확장이 되도록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대가 없이 은혜를 베풀 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은혜를 받음에서, 이제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진실로 믿으면서 구원을 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을 전하여서 특별한 구원 혹은 영생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것이다.
 
  긍휼함은 누군가가 사과를 하거나 용서를 빌 때 그의 실수와 잘못과 죄를 용서하여 주는 것이다.  매를 10대 맞을 사람이 겁을 먹고 떨고 있기에 불쌍해서 혹은 잘못했다고 빌기에 1대만 때리거나 책망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장 구속하여야 할 범죄자이지만 그가 어린 자녀를 먹여 살여야 하기에 혹은 어린 자녀가 불쌍해서 그 자를 집행 유예 대상으로 삼고서 방면하는 것이다.  당장 사형을 처벌받을 중범죄자이지만 불쌍해서 무기징역이나 종신형을 치르게 하는 것이다.  또한 내가 남을 긍휼히 여겨 주었기에 나도 누군가에 의하여 긍휼함을 받는 것이 된다.
 
  선함은 누군가가 믿음이 있거나 선함을 받을 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였기에 받는 것이다.  그리고 심령이 정결한 자와 하나님의 경외한 자와 하나님을 사랑한 자가 받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함을 받기 보다 선함을 베풀어 주는 것이 믿음의 증거가 있고 성령과 빛의 사람된 표적이다.  또한 선한 행위를 한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영광과 영원한 평강을 얻게 된다고 성경이 기록하는데, 선함을 베풀어 주는 자가 선함을 받는 자보다 더 복된 자임에 분명하다.  또한 사랑은 자신이 누구를 필요로 해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갓난 아이를 보거나 생각하면서 자신의 분신과 생명과 같이 느끼고 소중하게 여기면서 자신의 모든 것과 생명까지 받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이나 애인이나 친구나 동료나 전우나 교우나 상관이 없는 자나 심지어 원수에게 그와 같은 희생적인 마음과 행동이 있는 것이 사랑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일 개의 집사보다 못한 목사로서, 지금까지는 거룩하고 의로운 신앙생활과 삶을 살려고 애쓰는 자에서, 이제부터는 주님의 삶을 닮기 위하여 스데반 집사의 순교적인 신앙과 삶을 본받으면서 신앙의 계단을 올라가기를 결심한다.  그리고 스데반 집사님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져서 주님이 바라 보시거나 다시 오실 때에, ‘다행히, 인자가 올 때에 의인을 보겠구나’ 라는 말씀이 있기를 기원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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