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부터 늘 걱정이었다. 남편은 쓸데없이 걱정하는 기우(杞憂)라면서 필자의 말을 잘랐지만, 영어 한마디도 못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엄마의 마음은 편할리가 없다. 의사 소통이 안돼서 목이 말라도 물도 마시지 못하면 어쩌나, 포크를 도시락 가방 밑바닥에 두었는데 찾지 못해 점심을 못먹으면 어쩌나, 아이들이 괴롭히면 어쩌나 등의 생각은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다행히도 큰 아이의 경우는 남편의 말대로 기우에 그쳤다.
하지만 작은 애는 조금 다른 것 같아 걱정이다. 지난주 부터 유치원을 옮겼다. 회사 컴퓨터에서 아이가 노는 것을 볼 수 있다는 매리트가 있고, 일단 집에서 가깝다는 것에 끌려 그리로 옮겼다. 큰 아이보다 훨씬 적응을 잘할 것 같았던 둘째 아이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어제도 역시 둘째 아이는 울고 있었다. 하루종일 눈이 아파서 울었는데, 선생들은 그냥 아이를 내버려두기만 한 것 같았다. 그래서 물었더니 점심먹고 난 뒤에 데이빗이라는 아이가 놀이터에서 흙을 던져서 눈을 뜨지 못했다면서 울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점심때부터 5시간 동안 눈이 아팠다는 말이다. 순간 울컥 치밀어 올라 선생한테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냈다. 그러고 아이를 안고 돌아서 나오는 필자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미국 유치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를 그들이 있는 학교에 안보낼 수도 없는 일이다. 포커스 식구들은 모두 아줌마들이다. 아이가 둘은 기본이고, 셋인 가족도 두 가정이나 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들과 남편 도시락을 싸서 보내고 나면 힘이 쭉 빠진다. 그리고 다시 회사로 출근을 해서 일을 한다. 힘에 부치지만 불평 한마디 없이 집안일과 바깥일을 꿋꿋이 해내는 포커스의 엄마들을 보면서 배울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 이들도 아이들을 전학시키면서 혼자 밥을 먹었다는 말에 가슴이 찡했고, 학교 가기싫다고 아침내내 떼를 쓰는 탓에 기운을 빼야했고, 야비한 아이로부터 왕따를 당해 가슴이 아팠던 일을 한번쯤은 모두 겪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밝고 건강하게 자라준 아이들이 얼마나 고마운 줄 모르겠다. 그러다가도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어떠한 일이 생길지 모르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자다가도 잠을 설칠 때가 있다.
요즘 한국의 학교 폭력에 대한 뉴스를 들을때마다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말 광주 한 아파트 계단에서 목을 매 자살한 아이는 중학교 2년생이었다. 또래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하고 금품을 빼앗겼다. 가해학생은 결국은 구속됐다. 지난 1년간 왕따 폭행을 당했다는 어느 중학교 1년생에 대한 수사는 진행될수록 사회적 파장이 크다. 가해학생이 피해자에게 가한 학대의 수위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바지와 팬티를 벗긴 뒤 문방구에서 사온 장난감 전기충격기를 성기에 쏘고, 여자애들 보는 앞에서도 성행위 흉내를 냈다는 부분의 진술은 단순히 어린 학생의 장난으로 치부하기에는 도가 넘어섰다.
한국에서 타민족의 피가 섞일 경우는 당연히 왕따 대상이 된다. 방글라데시 출신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초등학교 4년생, 동급생들은 작년 5월 ‘반에서 가장 재수 없는 아이’를 뽑는 투표에서 이 학생이 뽑히자 26명의 급우 가운데 24명이 이 아이를 교실 뒤로 끌고가 쓰러뜨린 뒤 마구 발로 차 온몸에 상처를 입혔다. 이런 식의 학교 폭력 사례에 대해 다 적으려면 아마 한 달도 부족할 것 같다.
미국도 따돌림이나 왕따 문제는 예외가 아니다. 얼마전 뉴욕에서 따돌림을 견디다 못해 한 학생이 자살을 선택했다. 이틀전 플로리다에 소재한 한 중학교 통학버스 안에서는 학생들이 같은 학교 학생 한 명을 의식을 잃을 때까지 집단폭행하는 일도 발생했다.
갑자기 우리 아이들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대부분의 한인 부모들이 미국에 이민온 가장 큰 이유는 단연 자녀 교육이다.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생각은 너무나 무책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부모라면 왕따에 대처하는 법, 아이들과 소통하는 법, 학교 시스템 정도는 대충이나마 알아두어야 할 것 같다.
미국에서 우리는 이민 가정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아픔은 어른들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부모가 자녀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지 못한다면 굳이 미국까지 이민을 온 의미가 없어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인 부모들은 자신들이 영어를 몰라서, 학교 시스템을 몰라서 자녀들에게 충고나 조언을 해 주지 못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도와줄 한인단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이것도 없으니 콜로라도에 있는 부모의 역할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운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우선 한인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를 중심으로, 학군의 총책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학교의 정책, 교육 시스템, 왕따를 당했을 때 대책, 학생들에 대한 학교측의 당부 등을 들어 볼 계획이다. 이번주부터 오로라 학군, 체리크릭 학군, 덴버학군 등의 교육감 순으로 인터뷰가 게재된다. 요청이 있다면 일대일 면담이 가능한 세미나 개최까지 고려하고 있다. 다행히 콜로라도주의 교육감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 교육열에 대한 칭찬에 힘입어서인지, 한인 매체와의 인터뷰에‘Honor’라는 단어를 사용할 정도로 반겼다. 이들을 통해 우리 부모들이 조금이나마 미국 학교를 배우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미국 학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라고 자녀들에게 왕따 당하는 부모는 되지 않길 바란다. <편집국장 김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