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숙 기자
옛말에 부(富)는 3대를 가기 어렵다고 했다. 부를 쌓기도 어렵지만 그것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10대, 300년에 걸쳐 부를 이어온 집안이 있다. 이렇게 한 집안이 장기간 부를 유지한 사례는 전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인데, 그 주인공은 바로 경주 최씨 집안이다.
최 부잣집에는 육훈이라 하여 집안을 다스리는 6가지 지침이 있었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마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기,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시집 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 옷을 입어라.’가 그 여섯 가지 가르침이다.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는 것은 양반 신분만 유지하고 당쟁에 휘말리거나 권력을 탐하지 말라는 뜻이다. 또 재산이 만석을 초과하면 소작료를 낮춰주었기 때문에 주변 소작인들은 최 부잣집 논이 늘어나기를 원하는 현상이 발생할 정도로 인심을 얻었다. 흉년기에 궁핍한 사람들이 헐값에 내놓은 땅을 사들이는 것은 사람이 해서는 안 될 행동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렇게 300년간 부를 유지해왔던 최 씨 집안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항일 독립운동과 교육사업(영남대)에 전 재산을 바치는 것으로 기나긴 부의 세습을 마무리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부자가 있다. 칭찬받는 부자와 욕먹는 부자. 전자에 대해서는 대개 그들이 가진 부가 당연하다고 여기며, 그들의 부를 좋게 평가한다. 그것은 그들의 도덕성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후자는? 그들이 돈을 버는 방법과 쓰는 방법에 있어서 도덕적인 문제가 있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때 그 부자는 욕을 먹는다. 올해 9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가 등장했을 때, 사실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나는 주식과 별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월가에 이어 ‘서울을 점령하라’, ‘여의도를 점령하라’는 외침에도 그냥 ‘왜 저럴까?’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의 분노가 무엇을 향한 것인지를 알았을 때는 나도 밤잠을 설쳤다. 정말 일반적인 소시민들도 정치, 경제에 무한한 관심을 갖게하고 공부하게 만드는 세상이다.
월가의 외침은 대다수의 부자를 향한 외침이 아니라 1%를 향한 외침이다. 익히 아는 것 처럼, AIG 구제금융을 위해 세금으로 모은 130억 달러가 골드만삭스로 들어간 후 골드만삭스 임원들은 18조원의 상여금을 나눠가졌다. 물론 이후에 골드만삭스는 100억달러를 상환했지만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또한 1%의 사람들이 벌이는 어이없는 일 중 하나는 헤지펀드(hedge fund)이다. 헤지펀드는 많은 돈을 이용해 최소한의 손실로 최대한의 이익을 얻는다. 많은 헤지펀드들이 위장 회사를 설립하고 막대한 자금을 운용하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또한 단기 투자와 단기고수익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해당 국가에 외한위기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
지금의 경제 그래프는 1920년대 말, 대공황 때의 그래프와 비슷하다. 1920년대 미국의 경기 상승을 지탱했던 과잉자본은 1920년대 말 그 정점에 이르러 과도신용과 과도투기가 누적되고 내국재 과잉이 초래되면서 주식시세 대폭락을 계기로 심각한 대공항이 시작되었다. 이 때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은행 파산으로 50만명이 예금을 찾을 수 없게 되었고 한 해 동안 2300개 은행이 문을 닫았으며 3년 동안 매주 6만 4천명의 실업자가 쏟아져 나왔다. 대공황의 발생지는 미국이었지만, 미국과 경제 협력 또는 수출입 관계를 맺고 있던 독일, 영국, 소련, 일본, 오스트리아와 호주 역시 타격을 입었다.
지금 일고 있는 99%의 분노는 1%의 탐욕에 대한 분노이다. 경기 침체로 주택을 압류 당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금융권에서는 성과급 잔치가 일어난다. 한 나라가 무너지는 위기에서 이 위기에 배팅한 1%는 배당금을 챙긴다. 이들은 역사 속에서 어떤 부자로 기억될 것인가? 그들과 함께 하는 정치인들은 또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진정한 부의 의미를 알고 있었던 최 부잣집 이야기가 더 많이 생각나는 시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