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우리집에는 두 마리의 개가 있었다. 한마리는 순종 진돗개이고 또 하나는 검정색 잡종개로 소위 말하는 똥개였다. 뚜렷한 이름도 없이, 그냥 밥 줄때만 할머니가 ‘메리’라고 불렀다. 그래서 두 마리의 메리는 평생을 집 앞마당에 있는 커다란 호두나무 아래 개집에서 보내며 우리 식구가 먹다남은 잔반을 먹으며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불쌍하기 짝이 없는 삶이었다. 개목줄에 매여 개집 반경 1미터를 뱅뱅 맴돌며 평생을 살아야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두마리는 종자 만큼이나 성격도 판이하게 달랐다. 차분한 성격의 진돗개는 의젓한 모습으로 늘 흐트러짐 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까만 잡종개는 우리가 근처에 가기만 하면 개줄이 끊어져라 날뛰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그러다 보니 개줄이 남아나지 않아 걸핏하면 개줄을 끊고 도망쳐서 한참을 돌아다니다 우리집에서 일하던 아저씨에게 잡혀서 다시 돌아오곤 했다.
결국 잡종개의 가출이 지겨워진 할머니는 이 개를 개장수에게 팔아버렸다. 개장수 아저씨 둘은 잡종개를 받아 우리집으로 들어오는 골목길에 세워진 전봇대에다 개를 매달고는 죽을 때까지 몽둥이로 개를 팼다.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던 개가 이윽고 잠잠해지자 아저씨들은 축 늘어진 개를 오토바이에 싣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반면 착한 진돗개는 큰 말썽 부리지 않고 평생을 살았다. 하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진돗개도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삶이 힘들어 개줄을 끊고 도망간 적이 10여년 평생 세번 정도 있었다. 이내 잡혀오긴 했지만, 다시 개줄에 목이 매여 풀이 죽은 채 개집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진돗개의 모습은 어린 내눈에도 참 짠해 보였다.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진돗개도 나이가 들어 관절염과 노환이 오기 시작했다. 학교 갔다오면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기는 하는데, 움직임이 워낙 둔했다. 걸음걸이도 시원찮아졌고, 절뚝거리는 폼이 어디가 아픈 것처럼 병색이 완연했다. 하루의 대부분을 낮잠을 자며 보냈고, 밥을 가져다줘도 힘들게 눈을 한번 떠 개밥그릇을 한번 보는둥 마는둥 이내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개가 걱정이 되어 아침에 마당에 나가보니 개가 개줄을 끊고 사라지고 없었다. 그 몸으로 어디로 갔을까 싶어서 집 근처를 찾아 돌아다녔다. 여름 끝자락이어서 아침 공기는 제법 선선해졌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개가 안 보여 누가 아픈 개를 훔쳐갔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집 근처에 있는 말라붙은 도랑 바닥에 우리개가 드러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위에 놓인 작은 다리 그늘에 가려져 아까는 미처 보지 못한 것이었다. 개는 가뿐 숨을 내쉬며 힘겹게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도랑 아래로 뛰어내려가 쪼그리고 앉아 개를 쓰다듬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개는 다시 고개를 앞발 사이에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할머니에게 뛰어가 개를 도랑 밑에서 찾았다고 하자 할머니는 “개가 갈때가 되었나보다” 하셨다. 할머니는 개는 죽을 때 집 밖에 나가서 죽는다고 하셨다. 개는 마지막 힘을 다해 개줄을 끊고 집 밖으로 나가 죽을 자리를 봐둔 것이었다. 할머니의 말씀대로 우리 진돗개는 그날 오후에 숨을 거두었다. 아저씨들은 개를 들것에 말아 지게에 지고 산에 가서 묻어주고 왔다. 몸에 좋다면 뱀이든 지네든 가리지 않던 아저씨들도 차마 평생을 충직하게 집을 지키며 살아온 우리집 개를 잡아먹을 생각을 못했던 모양이다.
가끔 커다란 호두나무 아래 우두커니 앉아 파란 하늘을 유유히 떠가던 구름을 바라보고 있던 그 개가 생각난다. 평생을 개 목줄에 매여 반경 1미터를 맴돌며 살아야했던 개가 그 목줄에서 벗어나 구름처럼 자유로와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죽음 뿐이었음을 그 개는 알고 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