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같은 곳을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한다. 오해임이 분명한데 이해한다고 말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한 부동산 업자에게 계속 식사를 같이 하자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몇 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그 부동산 업자에게 전화를 한다. 아주 당당한 어조로 ‘밥 한번 먹어야지’하면서 식사 요청을 한다. 다음날 그는 또다시 부동산 업자에게 전화를 걸어 ‘화장실 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다, 현관문이 삐걱거린다’면서 불만을 늘어놓는다. 그러고는 또다시 저녁을 먹자고 한다, 술도 한잔 사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는 얼마전 3만달러짜리 콘도를 구입했다. 그가 부동산 업자에게 그토록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이것 때문이다. 그래서 이 바이어는 부동산업자에게 대단한 은혜를 베푼 것처럼 평생 밥을 얻어 먹을 심산이다.
하지만 부동산 업자측의 생각은 다르다. 3만 달러짜리 매매를 성사시키려면 100만 달러짜리 집을 팔 때와 똑같은 과정을 거쳐야함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돌아오는 수익은 적다. 그다지 타산이 맞는 거래가 아니다. 그런데다 바이어의 지속적인 고자세로 인해 클로징을 하기도 전에 질려버렸다. 한 사람은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하지만, 또다른 사람은 득보다 실이 많은 거래라고 생각한다.
자녀들은 시시때때로 책을 사겠다고 돈을 받아간다. 아이들이 책값, 학원비값, 체육복값, 학용품비, 간식비 등을 계속 요구해도 굳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이유는 학교 생활에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부모들은 너무나 열심히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 흡족해한다. 하지만 진짜 책벌레를 제외하고는 자기가 사고 싶은 옷이나 게임기, 연애 비용으로 책값을 사용한 경험은 아이들에게 한번쯤은 있을 법한 얘기다. 때로는 공부를 잘해 우등반에 들어간 자녀들을 보면서 자랑스러워한다. 동시에 부모들은 평범한 반에서 일등 자리를 고수했던 아이만 기억한다. 그것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부담스러운 기대인 줄 모른 체 말이다. 정작 우등반에 들어간 아이는 매번 하위 등수를 벗어나지 못해 오히려 자신감을 잃고 의기소침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외식을 자주 하는 이 사람은 바쁜 점심 시간마다 식당에서 화풀이를 하는 것 처럼 보인다. ‘반찬이 덜 나왔다, 밥이 적다, 국이 짜다, 이렇게 자주 오는데 서비스는 없느냐, 웨이츄레스를 세번이나 불렀는데 안왔다, 김치가 너무 시었다’면서 웨이터를 불러세워 일일이 말한다. 옆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불편할 정도로 웨이터에게 타박을 준다. 그는 자주 식당에 온다는 이유로, 그 식당을 먹여살린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 혹은 손님은 왕이라는 생각에 집착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식당은 이런 손님은 더이상 오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는 것쯤은 이 사람도 이제는 알아야 할 것 같다. 간간이 콜로라도에서도 대외적인 행사가 있다. 총영사관에서, 혹은 한국 정부에서, 아니면 전미 무슨무슨 협회 소속의 사람들이 덴버를 방문했을 때다. 외부 인사들이야 당연히 그 지역의 단체장을 우선적으로 만남의 대상으로 선정한다. 그리고 간담회를 열어 방문한 목적에 대해 설명하면서 건설적인 얘기를 이어나간다. 이런 간담회를 참석하다보면 청중에 따라 연설하는 내용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동포들은 어떤 생각일까. 제대로 일하는 단체가 없는 이 곳 콜로라도에서, 이름만 내걸고 있는 협회에게 무엇을 호소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실천을 기약할 수 없는 헛발질에 불과하다. 그들은 나름 단체장이라고 생각해서 모두 참석한다. 하지만 행사때만 얼굴 비치는 단체장, 독자들은 이미 그 협회와 이름에 식상해 있다.
한국에서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틀’을 벗어난 파격 행보가 연일 화제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 검토 이후 50%대의 폭발적인 지지율을 뒤로 한 채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후보직을 양보했고, 박 후보가 한나라당 공세로 어려움을 겪을 때 ‘키다리 아저씨’처럼 나타나 한 통의 지원 편지를 건넸다. 또 몇 일 전 1500억원대의 주식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하며 통큰 기부를 결정했다. 그의 일련의 행동이 차기 대권을 향한 ‘그랜드 플랜’이란 분석까지 나왔다. 중요 결정 사항이 있을 때마다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들은 정치인들에 의해 둔갑되어 ‘편지 정치’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정치인들은 그의 행동 모두를 ‘대선을 염두해 둔 정치적 행위’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안 원장의 편지들은 그리 별스러운 일이 아니다. 중대한 일을 결정할 때마다 편지를 쓰는 것은 말을 아끼며 ‘문자’로 소통하는 그의 화법일 뿐이다. 정치권에서 만감을 교차시킨 그의 통큰 기부에 대해 그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것을 실천한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밝혔다. 그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듣지 못하는 정치권은 계속해서 머리가 복잡해질 수 밖에 없다. 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걸 보면 희로애락은 주관적인 인식에 달린 것이 확실하다. 아름다운 장미꽃에 하필이면 가시가 돋았을까 하면서 가시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시에서 저토록 아름다운 장미꽃이 피어났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가시가 돋보일 수 있다. 고 법정 스님은 ‘자기 나름의 이해’는 곧 오해의 발판이라고 했다.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자기 마음대로 이해한 부분이 없었는지, 모두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편집국장 김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