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업소록 작업을 마무리 하면서 알게 되는 일인데, 이 좁은 동네에서 참 많은 업체들이 일년사이 문을 닫거나 타주로 이사를 가버린다는 것이다. 얼마전 필자는 지난 8년동안 제작에 참여해온 업소록을 넘겨보았다. 없어진 업체들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수요일 밤마다 신문 마감을 해 놓고 가볍게 요기라도 할 수 있었던 종갓집이 없어졌을때도 서운했다. 늦은 저녁을 먹고 맥주 한 잔, 간단한 안주거리, 또 푸짐한 공짜 반찬들이 우리에겐 딱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던 서울 장터 우거지 설렁탕을 덴버에서 더 이상 맛보지 못할 때도 아쉬웠다. 고춧가루 넉넉하게 쓴 서울장터의 김치와 깍두기는 입맛 없을 때마다 생각난다. 좀처럼 다른 식당에서 볼 수 없는 쌈밥 때문에 자주 찾았던 대장금 식당도 그렇다. 특히 점심 때에는 꽁치 김치찌개가 인기 좋았다. 최근에 문을 닫은 세종관 식당의 감자탕은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맛있었다. 저렴한 점심가격에, 부담없는 약속장소로 그만이었는데 막상 없어지니 참 서운하다. 미도파 식당은 이들과 다른 이유로 문을 닫긴 했지만, 여하튼 미도파 식당의 구수한 청국장과 푸짐한 돌판메뉴, 맛깔스런 겉절이를 더이상 맛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겉도는 침만 삼키게 된다.
나름 익숙해 질대로 익숙해져 있던 곳들이 문을 닫고 나니 서운함이 크다. 이외에도 지난 몇 년 사이 문을 닫은 곳이 여럿 된다. 중국식당, 비디오 가게, 한의원, 노래방 그리고 부동산 경기 불황이 계속되면서 리얼터들의 전업 또한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신문사도 마찬가지였다. 1백 년의 전통과 역사를 자랑했던 덴버 유력 일간지 한 개와 두 개의 한인 신문사가 두해전 문을 닫았다.
이런 위기에서 살아남을 만한 묘수를 찾아봐야겠다. 흔히 위기와 함께 기회도 온다고 한다. 위기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성공과 발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위기는 피해야 하고 기회는 놓치지 말고 잡아야 한다. 이렇게 기회를 잡으려면 부득이 위기와 싸우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오는데도 항상 위기만 강조한다.
위기 탈출을 위해서는 우선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자신을 만들어야 한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극복한 업체가 생각난다. 바로 경쟁이 치열한 컴퓨터 업계에서 제 입지를 굳힌 인텔사이다. 기업에게 팔 것이 없어진다 함은 재앙을 뜻한다. 그러나 비즈니스 세계에선 실제로 그런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가 있다. 1980년대 중반 무렵 반도체기업의 선두주자였던 인텔사에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1968년 창업된 인텔은 대다수 기업들이 한 개의 실리콘 칩에 더 많은 수의 트랜지스터를 넣기 위해 고심하던 통념을 뛰어넘는 일을 시도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탄생된 것이 컴퓨터에서 기억기능을 수행하는 칩을 만드는 일이었다. 인텔은 64비트 메모리를 시작으로 반도체 회사로서 화려한 질주를 시작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이 되면서 상황이 조금씩 변했다. 일본 메모리 기업들이 공격적인 투자와 과감한 원가절감으로 인텔을 비롯한 미국계 기업들에게 실질적인 위협세력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메모리 주요 구매회사인 휴렛팩커드는 일본산 메모리 칩이 미국 회사보다 더 좋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표하게 된다. 인텔의 내부 분위기는 ‘그럴 리가 없어’였다. 하지만 인텔의 CEO 앤드류 글로브 전회장은 기존시장에서 싸움을 계속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했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그 유명한 마이크로 프로세서 이다.
하지만 1984년 경기가 악화되면서 메모리 시장은 꽁꽁 얼어붙게 되고 인텔 내부에서는 거대한 메모리 공장을 건설해서 일본에 당당히 맞서자는 의견과 좀 더 영리해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첨단기술을 사용해야 한다는 두 가지 의견이 충돌했다.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결정적인 시점이 도래하였음을 기꺼이 받아들인 앤드류 전회장은 메모리로부터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주력 상품으로 정하는 조치를 과감하게 취하게 된다. 일종의 혁명이었다. 이처럼 사업구조 자체를 바꾸는 위험한 시도를 두고 훗날 앤드류 글로브 회장은 “죽음의 계곡을 건넌다” 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1986년 인텔은 ‘마이크로 컴퓨터 회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이에 맞춰서 회사조직, 인력배치, 자원배분 등 모든 것을 변화시켜 나가게 된다. 오늘의 인텔은 일본기업의 도전이라는 위협 앞에서 다시 재탄생하게 된 회사라고 볼 수 있다. 위기를 기회로 이용한 인텔의 멋진 사례가 오늘의 극심한 불황에 맞서 싸우는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척 크다.
한인 커뮤니티에도 불황을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는 업체들이 몇몇 눈에 띈다. 가격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손님이 더 늘어난 진흥각이 그 첫번째 사례이다. 정중하게 가격인상을 공시하면서, 음식 양은 더욱 알차게 챙겨낸 탓이 아닐까 싶다. 또, 누가 뭐래도 한식당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아야 보기가 좋다. 꾸준하게 장사가 잘 되는 한식당들을 보면 계절따라 재빠르게 주력 메뉴를 바꾸어 놓는 센스가 돋보인다. 대형 마트 속에서 몇 년동안 품질로 승부를 걸어온 M마트 또한 불황을 이겨낸 한인업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위기에 주저 앉지 않고 방법을 찾아나서는 경영을 계속한다면 한인 업체들의 미래도 인텔사 처럼 밝지 않을까. 위기의 또다른 이름은 기회라는 사실을 새겨두자. <편집국장 김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