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노, 독불장군이 딱 맞는 표현이죠.”
심각한 섹스리스에 빠진 아내를 고쳐달라며 진료실을 찾은 A씨의 아내는 남편 앞에선 도통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않다가 단독면담으로 들어가자 속내를 털어놨다. 결혼 초부터 늘 주도권을 잡고 모든 일을 자신의 뜻대로 결정하던 남편 A씨. 연애 시절 주도적인 남편의 모습에 끌렸던 아내는 막상 결혼해 보니 늘 제 뜻대로만 하려는 남편에게 점점 지쳐갔다. 특히 남편은 돈 문제에 집착해 통장을 내놓지도 않고, 수입과 지출 내역을 꼼꼼히 체크하고 잔소리를 해댔다.

“아이의 학원비도, 아파트 관리비도 딱 절반만 줘요. 제가 일하는 것도 반대하고 어떻게 나머지를 메우라는 건지.”

남편의 특이한 ‘절반’의 룰은 아내를 끊임없이 힘들게 했고, 아내는 하녀 같은 자신의 모습에 서글펐다. 남편의 또 다른 특이 습관은 아내에게 심한 잔소리를 하고서는 꼭 잠자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성흥분에 필요한 애정과 적절한 스킨십 대신, 아내는 늘 비난과 잔소리를 떠안은 채 억지로 성행위 요구에 응해야 했다. 그렇게 옥죄는 남편과의 성행위는 점점 싫어졌고, 급기야 A씨의 아내는 몸 여기저기가 아파서 성생활에 도저히 임할 수 없었다.

“아내가 아프다는 거 순 거짓말입니다. 즐겁지 않은데, 어찌 분비가 된단 말입니까?”
A씨는 아내가 성행위 시 분비가 되니 즐거워하는 증거라 했다. 이는 성범죄에서도 가해남성들이 들이대는 흔한 궤변일 뿐이다. 왜냐하면 여성의 분비현상이 반드시 주관적 흥분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온몸이 아프다며 여러 병원을 전전했던 아내에게서 신체적 문제가 발견되지 않다 보니 남편은 아내가 꾀병을 부린다고 여겼다. 아내는 ‘신체화장애’라는 병을 앓는 것으로, 뚜렷한 신체적 원인 없이 분노·불안 등 부정적 심리가 통증이나 신체증상으로 발현되는 병이다. 몸이 아프면 남편이 물러나니, 아내의 무의식이 질병을 이끌고 성생활을 피하는 길이 된 셈이다.

A씨의 아내처럼 섹스리스의 원인 중에는 신체적 문제가 아니라 부부의 갈등이 핵심인 경우가 꽤 있다. 고부갈등, 남편의 외도, 일방적인 태도, 돈 문제 등이 장기적으로 반복되는 상태에서 아내의 불만과 분노는 남편의 권위나 일방성 탓에 해소되지 못하고 만다. 또 자녀에 대한 책임감으로 분노를 억지로 누른 채 살아가곤 한다. 이런 여성들은 A씨의 아내처럼 성욕이 차단되고 섹스리스로 흐르기도 한다.

섹스리스로 필자의 진료실을 찾은 A씨 부부는 쌍방의 치료가 필요했다. 남편 A씨의 지나친 컨트롤은 어머니에 대한 강한 분노감정이 아내에게 전이된 형태로 해석됐다. 또한 아내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내적 불안과 열등감이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컨트롤하는 식으로 나타나 A씨의 내면도 치료가 필요했다.

아내가 성기피에 빠진다 해서 반드시 성행위 자체가 싫은 것만은 아니다. 몸이 아파서, 피곤해서 등등의 다른 핑계를 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사실은 부부 사이의 불만과 분노를 파업이란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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