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여행하면서 여러 명의 도둑을 만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입가에 미소가 머물지만 당시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첫번째 도둑은 네델란드에서 만났다. 마리화나를 팔러 나온 젊은 청년과 그의 친구들이었다. 내가 묵을 유스 호스텔은 홍등가를 지나가는 외길 끝에 위치해 있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그 골목을 벗어나려고 달음질 치듯 바삐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두 청년이 나타나 걸음을 멈추게 했다. 한 사람은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로 담배같은 것을 내밀고는 열심히 이에 대해 설명을 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한참 동안 듣고 나서야 마리화나를 싸게 주겠다는 얘기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 청년의 제안을 거절하고 다시 걸음을 재촉하는데 갑자기 배낭 위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또다른 청년이 배낭 맨 위의 지퍼에 손을 얹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몸을 훽 돌려 팔을 내려침과 동시에 ‘야!’라고 한국말고 소리를 치니 놀라서 도망을 갔다. 숙소에 도착해 살펴보니까 다행히 잃어버린 물건은 없었지만 지퍼는 반쯤 열려 있었다.
자정이 넘어 도착한 이집트 카이로 공항, 섭씨 40도, 화씨 100도를 웃도는 날씨의 흔적은 밤늦게까지 역력했다. 예정대로라면 오후5시쯤 카이로 시내에 도착에 숙소를 정했어야 했는데 비행기가 너무 많이 연착되면서 계획이 엉망이 되었다. 후진국을 다닐수록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니 불만을 터트려봤자 소용이 없다. 호텔을 잡지 못하면 공항에서 노숙을 해야 할 상황. 배낭을 둘러메고 터덜터덜 공항을 나오는데 반갑게도 한국 어르신들의 단체관광팀이 눈에 띄었다. 오지 못한 일행이 있어 방이 하나 남는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 그 분들을 따라 나섰다. 마침 호텔은 공항 주변에 있었고 외관도 그럴싸했다. 너무 피곤한 탓에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이상한 인기척을 듣긴 했지만 눈이 떠지지 않았다. 잠결에 가지고 갔던 비디오 카메라만 비싼 것이라는 생각에 끌어안고 잤다. 그러다가 계속 이상한 느낌이 들어 간신히 상반신만 일으켜 앉았다. 키가 크고 덩치가 큰 한 사내가 방문입구에 서 있었다. 잠결에 “어이~”하고 소리를 내어 대충 불렀는데 그 키 큰 도둑님은 문을 열어놓은 채 도망을 갔나보다. 아침에 밤새 일어났던 일을 곰곰히 생각해봤다. 잃어버린 물건은 없었지만, 방문은 활짝 열려 있고 손잡이가 부서져 있었다.
피라미드를 보기 위해 길을 나선 날이었다. 책에서 보면 세개의 피라미드가 바로 옆에 붙어 있어 구경하기가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는 포토샵의 조작이다. 케프렌 피라미드를 중간에 두고 양 옆으로 위치해 있는 세계 3대 피라미드까지 걷는 일은 멀고도 험했다. 모래바람과 뜨거운 뙤약볕을 피하기 위해 머플러를 둘러쓰고 한참을 걷고 있는데, 한 남자가 내 옆에 바싹 붙었다. 허허벌판과 다름없는 사막에서, 길도 넓고 사람도 없는데 왜 하필이면 내 옆에서 걷고 있는 것일까. 그 때는 너무 더운 나머지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어 머플러를 제치고 그를 바라봤다. 그의 손은 이미 내 가방안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가방을 쳐들면서 얼굴을 올려쳤고, 들킨 도둑은 정말 열심히 뛰어서 도망을 가버렸다.
배가 너무 고파서 나일강 주변에 있는 식당에서 요기를 했다. 그런데 옆테이블에 앉은 남자가 계속 쳐다보고 있어 불편했다. 밥을 대충 먹고 강변으로 나갔다. 나일강에는 몇 개의 돛단배가 떠 있었는데, 옆 자리에 앉아있던 그 남자가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내 배낭에 관심이 많은 듯 했다. 계속 따라다니는 것을 눈치챈 필자는 그 남자의 레이더 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른 배에 올랐다. 그뒤 그 남자는 강둑에 서서 한참동안이나 필자를 지켜봤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지금까지 이 도둑들이 생각나는 이유는 들키면 그 즉시 그만두지만, 들키지만 않으면 나쁜 짓을 계속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별반 다를바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수상한 이들의 행동을 항상 주시하기 때문에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의 착각이다.
더구나 의심받을 짓을 여러번 했던 사람들의 행동은 더욱 주시하게 된다. 그러니까 들키지 않았다고 좋아하긴 이르다. 이미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으니 말이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말도 여기에 포함된다. 처음에는 한사람한테 돈 100불 빌려서 안 갚더니, 점차 여러 명한테 빌려서 금액이 커지면 배째라, 처음에는 싫어하는 당사자만 욕을 하고 다니더니 이제는 아예 그 주변 인물까지 싸잡아 욕을 해서 삼자대면을 요청하면 오리발, 처음에는 회칙에 따라 단체장 뽑는다고 정의로운 척하다가 결국은 몇몇 끼리 모여 작당, 캐쉬어대에서 10달러, 20달러씩을 매일 훔치고도 월급 적게 받는다고 사장 험담을 하고 다니는 적반하장격 등. 이 모든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아는 척 할 가치가 없어 모르는척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들이 눈치없는 도둑에서 하루빨리 탈출하길 바란다. <편집국장 김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