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전 시애틀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공부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첫째 아이가 들어섰다. 그렇게도 원할 때는 안 생기던 아이가, 마음먹고 공부 좀 하려고 하니까 덜컥 임신이 됐다. 유학생 부부들의 생활이 비슷비슷하겠지만 당시 우리 부부는 방1칸짜리 아파트에서 살았다. 공부만 마치면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으로 떠나온 유학길이었기에 미국에서의 단촐한 살림살이가 그리 불만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일단 남편이 아이와 함께 미국에 살기를 원했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미국은 노력만하면 잘 살 수 있는 곳이라는 믿음에 미국 정착을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신분이었다. 학생신분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몇몇 대도시에 있는 일간 신문사에 이력서를 보냈다. 시카고 지사에서 답변이 왔다. 첫째를 낳은 지 넉 달 만의 일이었다. 수술을 한 탓에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시카고까지 혼자 면접을 보러 갔었다. 다행히 한국에서의 이력이 받아들여져 2주 만에 체류 비자를 바꿀 수 있었다.        

 미국에서의 언론사 생활은 이렇게 시작됐다. 신분해결을 위해 선택한 길이었다. 그리고 한참을 걸어왔다. 이제는 신분 걱정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길을 가고 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존심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그리고 허영도 묻어있었다. 돈벌이도 안 되면서 다른 사람들 눈이 두려워 신문사를 차마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텨보자, 다른 직업보다는 신문기자가 낫다 라는 쓸데없는 허영을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달리다가 풀어진 운동화 끈을 묶고, 또다시 묶으면서 달릴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주위의 응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 포커스를 창간한지 5년이 됐다. 6개월 만에 문을 닫을 것이라고 했던 소문은 정말 소문으로 남게 됐다. 이날이 있기까지 남편의 외조의 힘이 가장 컸다. 결혼 전부터 필자가 하는 일은 모두 후원해 주겠다는 약속을 하긴 했지만 정말 지켜줄 줄은 몰랐다. 매주 수요일 신문 마감날이면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면서 신문제작에 한 몫을 해왔다. 또 몇 해전 한국일보에서 일하면서 자체 행사를 준비한 적이 있었다. 그때 시카고에서 사장님이 왔는데, 제일 먼저 필자의 베이비 시터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던 일이 생각난다. 밖에서 편안하게 일을 할 수 있게 해준 장본인이라면서 말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벌써 8년째 첫째, 둘째를 모두 별탈 없이 키워주고 있으니 고맙다.    

 변함없이 필자를 이끌어준 광고주를 포함한 독자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매주마다 빠짐없이 전화를 걸어 응원해주는 독자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포커스가 당당히 설 수 있었다. 일명‘까는 기사’를 쓸 때마다 툭하면 전화해서 가만두지 않겠다, 고소하겠다, 밤 길 조심해라 등의 협박도 많이 받았다.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며 술 한잔 사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광고주한테 건방지다고 호통을 들은 적도 있었다. 주위의 질투 어린 시선으로 폄하될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우리 포커스 직원들이 있어 감사했다. 때로는 필자보다 더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그들의 자부심과 애정이 포커스의 나아갈 방향을 정한 일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포커스 신문사는 지난 5년 동안 꽤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콜로라도 언론역사상 최초로 동포를 대상으로‘신문기사 내용 선호도 설문조사’를 실시해 한인사회와 함께 만드는 신문으로 발전시켰고, 매 분기마다 ‘광고 바르게 읽기 캠페인’으로 광고주의 광고효과를 높였다. 문화센터를 개원해 무료건강검진, 교양강의, 각종 세미나, 월드컵 응원전 등 만남의 장소를 동포사회에 제공했으며, 웹사이트를 개설해 신문이 닿지 않는 곳곳에 콜로라도 소식을 전하고 있다. 또한 한인사회에 굵직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신속 정확한 보도를 하면서 주류 언론에서도 도움을 요청하는 신문으로 자리잡았다. 뿐만 아니라 콜로라도 청소년 음악회를 열어 청소년 문화의 불모지인 이 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싹 틔우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고, 많은 기획기사와 전문가 칼럼, 기사 실명제를 도입하면서 콜로라도 뉴스가 가장 많은 신문으로 그 위상을 정립했다.

 얼마 전 마트 앞에서 필자를 보면서‘팬’이라고 악수를 청한 독자가 있었다. 글을 읽으면서 속이 시원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면서 겁나게 글 쓰는 사람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올려 보였다. 기사 잘 봤다면서 만두 사다 놓고 간 독자들, 음악회를 마친 다음날 감사의 메일을 보내준 독자들, 반기문 총장님과 찍은 사진을 보고 감격의 전화를 하는 독자들,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대신 만난 것에도 감사해 술 한잔 사겠다고 격려하던 독자, 행사 때마다 끊임없이 후원해준 독자들, 이런 독자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포커스가 가능했다. 앞으로도 잘한 것에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잘못된 부분은 과감히 질타하는 용감한 동포사회를 기대한다. 이에 발맞춰 포커스 또한 기사 한 줄 한 줄이 동포사회를 움직인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창간 5년을 맞아 더욱 정진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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