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矛盾)’이라는 단어는 중국 고전 『한비자(韓非子)』에 그 기원이 있습니다. 한 상인이 창(矛)과 방패(盾)를 팔며 “이 창은 어떤 방패라도 뚫을 수 있습니다.”라고 자랑하였고, 이어 “이 방패는 어떤 창으로도 뚫리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물음 앞에 상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비롯된 ‘모순’이라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거나 스스로 충돌하는 상태를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단순히 상인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우리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자기 안에 서로 다른 방향의 두 힘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입으로는 “저는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진실보다는 편의를 선택할 때가 있습니다.“저는 앞에서 대놓고 말하지, 뒤에서 뒷말하지는 않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솔직히 말하는 것보다 침묵이나 회피를 택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누구나 모순을 안고 살아갑니다. 자신이 말하는 이상과 실제의 삶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가 말하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자기 진술은, 사실상 “내가 되고 싶은 사람”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지금의 나’를 이상화하여 착각합니다.“나는 진실한 사람이야.”라고 스스로 말하지만, 그 말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자기 이상일 때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런 모순된 모습을 보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누군가는 교회 안에서 거룩을 말하면서도, 정작 그 말 뒤에서는 비난과 판단이 오갑니다.

누군가는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타인을 외면하거나 배제하기도 합니다. 이런 현실을 보면 인간관계가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내 자신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비판하던 모습이 내 안에도 고스란히 있음을 발견합니다. 입으로는 “진리대로 살자.”라고 외치면서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 불안과 타협이 앞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국 나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이 사실을 더욱 절실히 느낍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도, 사람들 앞에서도 표리부동(表裏不同)하지 않겠다.”

마음에 다짐하지만, 어느새 말과 행동이 엇갈릴 때가 있습니다. 설교에서는 믿음을 선포하지만, 일상 속에서는 믿음보다 염려가 앞서기도 합니다. 다른 이들을 위로하면서 정작 내 마음은 지쳐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스스로가 부끄럽고 무력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요즘은 내 자신을 더 깊이 돌아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 안의 모순을 인정하면 오히려 타인을 이해하게 됩니다. 내가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다른 사람의 연약함도 자연스럽게 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자기 인식이 타인 이해의 출발점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나는 목회자이지만, 목회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입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고, 사랑을 말하면서도 사랑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목회 현장에서 성도님들을 대할 때,“이 분도 나와 같은 모순의 사람이다.”라는 마음으로 바라보려 합니다. 그 마음이 생기면 정죄보다는 공감이 앞서고, 비판보다는 기도가 앞섭니다. 모든 존재는 자기 안에 반대편을 품고 있습니다. 용기를 말하는 사람 안에는 두려움이 있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 안에는 숨기고 싶은 그림자가 있습니다. 이렇듯 인간은 언제나 양면성을 지닙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선함과 이기심이 함께 자리합니다. 이 양면성은 죄의 흔적이자 동시에 구원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그것과 평생 씨름하며 살아갑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만, 그 바람만큼 쉽게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모순은 단지 부끄러움으로만 남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모순을 직면하는 자리에서 복음은 더욱 선명해집니다. 인간이 스스로의 모순을 극복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그 틈을 메우시기 위해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모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의 말씀과 행동은 일치하였고, 그분의 마음과 삶은 언제나 하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분 안에서 처음으로 완전한 일관성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사랑을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실제로 사랑하셨고, 진리를 선포하셨을 뿐 아니라, 그 진리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분 안에는 속임도, 그림자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모순된 존재이지만, 그분은 순전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완전한 인간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대신, 완전하신 그리스도를 붙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할 때, 그 분의 온전하심이 더욱 빛나게 드러납니다. 결국 신앙의 여정은 모순을 부정하는 길이 아니라, 그 모순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길입니다. 우리는 모순된 존재로서 하나님 앞에 서지만, 그분의 은혜로 인해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의 모순을 덮으시고, 그분의 일관된 사랑으로 우리를 새롭게 빚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저는 제 안의 두 얼굴과 싸우며 살아갑니다. 한쪽은 믿음으로 살고자 하고, 다른 한쪽은 세상의 안락함을 붙들려 합니다. 그 두 세계의 충돌 속에서, 저는 조금씩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완전하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은혜가 여전히 저를 이끌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순은 인간의 본질이지만, 그 모순 속에서 우리는 은혜를 배웁니다. 양면성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관된 사랑을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저는 제 안의 불일치를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이렇게 고백드립니다. “주님, 저는 모순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순전하신 분이십니다. 저의 모순을 덮으시고, 주님의 진실하심으로 저를 새롭게 빚어 주옵소서.”

 

덴버 영락교회
한시원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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