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저마다 지식의 나무를 심고 열심히 키우고 있을 것입니다. 밝은 미래를 여는 힘이 배움에 있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우리 민족의 지도자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청년들에게 “힘을 기르소서”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 말은 그의 사상과 민족 운동 전체를 아우르는 핵심 정신이었습니다. 단순히 육체적 힘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반드시 길러야 할 세 가지의 힘을 강조한 것입니다. 첫째, 지적인 힘입니다. 도산은 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근본적인 이유중 하나가 교육 부재와 지식의 부족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청년들에게 배움을 통한 지혜와 실력을 길러서 조국을 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독립은 지혜와 학문, 그리고 준비된 실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둘째로 도덕적 힘입니다. 지식만으로는 나라를 구할 수가 없고, 반드시 깨끗한 인격, 정직, 절제, 자기희생과 같은 도덕적인 힘을 길러야 민족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거짓을 멀리하고 작은 일상에서부터 도덕적 습관을 쌓을 것을 가르쳤습니다. 셋째, 연합의 힘을 강조했습니다. 개인이 아무리 힘이 있어도 흩어져 있으면 의미가 없다고 했습니다. 도산은 흥사단을 세워 청년들이 연대하고, 같은 꿈을 향해 나아가도록 했습니다.
그 후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교육 운동과 민족 운동을 하면서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배워서 남 주나”라는 말을 강조했습니다. 이 말들은 배움의 목적이 자기 보호, 자기 이익, 자기 경쟁력 확보에 있다는 가치관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가치관은 지식을 자산으로만 여기며, 배운 것을 나누면 경쟁력이 줄어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풍부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어도 존경받지 못하는 지도자, 많이 배웠으나 영향력이 없는 리더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삶이 반복되면 결국 고립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반대로 “배워서 남 주자” 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니라”(딤후2:2). 하나님께 받은 지식과 지혜는 나눌때에 살아나고 흘려 보낼 때에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배워서 남주는 행위는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사명의 계승입니다. 배워서 남주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있는 교육을 통해서 머리(로고스)로는 논리적 표현 능력을 향상시키고, 과학적 사고와 비판적 사고력을 함양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말씀은 단순한 교재가 아니라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설교, 가르침, 상담, 심방 그리고 기도에서 말씀의 권위가 드러나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의 인격과 신뢰성(에토스)이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말씀이 공허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귀한 설교는 산상수훈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삶 자체였습니다. 가슴(에토스)으로 사람들에게 성실함과 정직함의 인격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열정(파토스)이 있어야 합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눈물과, 교회를 향한 사랑 그리고 진리를 향한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 영정은 성령님께서 부어 주십니다.
성경은 “배워서 남 주자” 의 인생을 살았던 여러 사람들을 소개되고 있습니다. 모세는 애급의 왕궁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그것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에 그는 자신이 배은 지식, 지혜, 조직력, 언어, 그리고 경험을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는데 사용을 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율법을 가르쳤고, 지도자를 세웠으며, 여호수아에게 리더십을 전수했습니다. 배워서 남 주는 리더가 한 민족을 살렸습니다. 율법학자였던 에스라는 말씀을 깊이 연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공동체 안에 가르침을 전수했습니다(에7:10). 참된 배움은 개인의 신앙 생활을 넘어서 공동체의 회복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예수님도 언제나 배운 것을 나누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고, 사명을 주시며, 그 제자들이 또 다른 이들을 세우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배움은 항상 제자 삼는 배움, 흘려보내는 배움, 성장을 위한 배움이었습니다(마28:19-20). 바울은 유대 율법과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까지 섭렵한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는 배움을 자신의 명예와 유익으로 삼지 않고 복음을 위해 “계승 시스템” 을 만들고 모든 것을 쏟아 부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서 복음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 또 전달해야 할 책임을 절감하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성도의 배움은 다음 사람을 위한 통로가 될 때 완성이 됩니다. 배워서 남 주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성경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나눌 때에 배움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식과 지혜는 나눌수록 커지는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교육을 출세의 도구로, 배움을 자기 발전의 수단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과 역사 속에서 참된 교육과 배움은 단순히 나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이웃을 섬기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배워서 남 주는 사람은 세대를 살립니다. 그를 통해 공동체가 살아나고, 세대가 이어지며, 하나님 나라가 확장됩니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알려진 장기려 박사는 의학을 공부한 뒤, 자신의 부귀를 위해 쓰지 않고 가난한 환자를 위해 평생 무료 진료를 하며 나눔의 삶을 살았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신앙적 헌신을 인도 빈민과 병자들에게 쏟아 부으며,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철저히 남을 위한 헌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배워서 남 줍시다.
홍해 선교회
조완길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