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집 마당에서 손님맞이 바베큐를 준비하다 허리를 다쳤다. 조금 무거운 것을 허리에 좋지 않은 자세로 들었더니, 허리가 찢어지는 것 같아 악 소리를 지르며 들던 것을 던져버리고 쓰러졌다. 정말 허리가 너무도 아팠다. 아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침대에 와서 누울 수 있었다. 어떤 자세를 취해도 허리에 통증이 있어서 어떻게 도움을 받아야 될지도 모르겠었다. 침대에 아들의 도움으로 침대에 오르는데 20분은 족히 걸린 듯 했다. 침대에 누워있는데도 통증이 덜할 뿐 허리는 계속 아팠다. 어떻게 누워도 허리에 통증이 있으니  시원한 방안 공기에도 나는 땀을 쏟아냈다. 침대에서 나와 일어나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혼자서 일어나보려고 안간힘을 쓰다 통증때문에 포기하고, 이번에는 둘째인 딸의 도움을 받고 간신히 침대에서 나와 몸을 일으켰다. 그것도 한 20분 걸렸다. 정말 너무 아프고 힘들었다.

그나마 통증이 덜한 자세가 누워있는 자세여서, 침대에 누워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누워있으면서, 신혼시절 아내가 첫째 아이를 가졌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내가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만삭이 되었을 때 ’침대에 이렇게 누워있어도, 저렇게 누워있어도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해야될지를 모르겠어’라며 힘들어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는 그 힘듦을 잘 몰라서 건성건성 대답하고 잘 도와주지 못했었는데, 내가 허리가 아프고 나니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가 얼마나 야속했을까?’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내는 그렇게 힘든 시간을 견뎌가며 4명의 자녀를 출산했다. 절로 고마운 마음이 생겼다.

허리가 아파 통증이 심하니, 통증 없는 상태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누워 있어도, 앉아 있어도, 서 있어도, 어떻게 몸을 하고 있어도 아프니 아픔 없이 앉고 서고 눕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당연한 일이었는데, 앉아 있고, 서 있고, 걷고, 눕고 하는 당연한 일상이 당연하지 않게 되니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실 보면,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은 우리 삶에 너무 중요한 것들이다. 숨 쉬는 것, 먹는 것, 자는 것, 움직이는 것, 말하는 것, 듣는 것 등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당연한 것들을 못하게 되거나 없어지게 되면 우리는 정말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손경민 목사님의 ‘은혜’라는 찬양곡에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라는 가사가 있는데, 더 공감이 되었다.

며칠 만에 몸을 가누고 예배당으로 와서 기도하러 맨 앞자리 장의자에 앉았다. 허리가 아파서 앉아서 기도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앉아서 기도하지 못하고, 서서 기도했는데 힘들어서 잠시 기도하다 말았다.

예배당에 나와 앉고 서며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 드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교회에 연세드신 분들이 많다. 그 분들 중에 몸을 움직이는 것이 힘드셔서 현장예배에 나오지는 못하고, 온라인으로 예배드리시는 분들이 있다. ‘얼마나 나오고 싶으실까, 이 자리가 얼마나 그리우실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태신앙이라 예배당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이 특별히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그렇게 나아가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고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었다. 일년에 한번 대제사장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는데, 그것도 눈 앞에서 제물을 잡고, 각을 뜨며 피가 철철 흐르는 것을 바라보며, 잔인하고 보고 싶지 않은 그 광경을 마주하며, ‘원래 내가 이렇게 죽어야 하는데, 저 양이 내 대신 죽는구나, 저 소가 내 대신 죽는구나’ 하는 것들을 겪어야만 1년에 한 번, 직접도 아니고 대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이신 그 분이 우리에게 오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는 능력과 방법이 없기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오셨다.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서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께로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였던 지성소를 막고 있던 휘장이 찢어졌다. 그 후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인정하는 자들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께로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지금 크리스챤들에게는 당연한 것인데, 그 당연함이 누가 어떤 일들을 해서 이루어 졌는가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감사할 수 있다. 우리는 없어지거나 못하게 되어야 소중한 것들을 깨닫게 된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생각이 많아지고 누리던 것들에 감사하게 된다. 감사하며 살면 좋은데, 진짜 감사는 결핍했을 때만 나오는 것 같아 아쉽다. 겪어봐야 힘들어봐야 아파봐야 진짜 감사가 나오는 것 같아 아쉽다. 오늘도 내 마음을 열어서 당연한 것 같지만,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되는 일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해본다. 그러면 참 행복할 것 같다.

덴버 영락교회
한시원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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