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자녀를 키우면서 한국과 가장 큰 차이를 실감하는 분야 중 하나는 바로 스포츠이다. 한국에서는 체육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지 않는 한, 일반 학생들이 스포츠에 깊이 관여할 기회는 제한적이다. 그러나 미국은 다르다.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축구, 야구, 미식축구 등 다양한 종목을 경험하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대표팀 활동이 대학 진학의 중요한 이력으로 작용한다.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은 학생 선수들은 장학금을 제안받거나,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도 한다.
이렇게 대학 입시와 직결된 스포츠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미국 내 대학 스포츠는 점점 더 ‘상업화’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특히 2021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 이후, 이 흐름은 한층 가속화되었다. 판결은 학생 운동선수들도 이름(Name), 이미지(Image), 초상권(Likeness)을 통해 정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허용하였고, 이후 각 주와 대학들은 빠르게 제도 도입에 나섰다. 콜로라도 주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 캠퍼스는 ‘Buffs with a Brand’라는 NIL 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학생 선수들이 스스로의 브랜드를 개발하고, 상업적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NIL 제도 도입 이전까지 미국의 대학 스포츠 환경은 상당한 제약 아래 있었다. NCAA(미국대학체육협회)의 규정에 따라 학생 선수는 자신의 이름이나 이미지, 초상권을 이용해 수익을 창출할 수 없었으며, 위반 시에는 자격 정지, 장학금 박탈 등의 제재가 뒤따랐다. 이는 학생 선수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 없이 학교와 NCAA, 코치들이 수익을 독점하는 구조였으며, 선수는 장학금 외의 경제적 보상 없이 무급 상태로 경기장을 누벼야 했다. 이러한 불균형은 지속적인 비판을 받아왔고, 결국 법적·도덕적 논쟁을 거치며 NIL 제도 도입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제 운동선수들은 SNS를 통한 홍보, 제품 모델 활동, 팬 대상 유료 이벤트 등을 통해 직접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콜로라도 대학교 풋볼팀의 스타 쿼터백 셰더르 샌더스(Shedeur Sanders)이다. NFL 선수 출신이자 현 팀 감독인 디온 샌더스의 아들인 그는, 2023년 한 해 동안 다양한 브랜드와의 제휴를 통해 수백만 달러의 NIL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NIL 제도의 최대 수혜자로 평가받는 그는 대학 스포츠의 ‘스타 상품화’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수익 구조는 모든 학생 선수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일부 인기 종목이나 유명 선수들에게만 기회가 집중되고,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낮은 종목의 선수들이나 신입생들의 경우 수익 창출이 제한적이다. 특히 NIL 수익의 ‘개인별 공개 여부’를 둘러싸고, 공공 대학의 회계 투명성과 개인 프라이버시 보호 사이의 긴장이 존재한다. 2024년 초, 콜로라도 지역 일간지가 일부 선수의 NIL 계약 내역을 공개한 사건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학 측은 해당 정보가 “대학 수입이 아닌 학생의 개인 계약”이라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시민단체들은 공공재 투입 프로그램에 대한 최소한의 감시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에 따라 콜로라도 주립대학 시스템은 2025년부터 NIL 계약의 핵심 정보를 비식별화된 형태로 집계하고 공개하는 방안을 시행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계약 체결 여부, 수익 범위, 계약 업종 등의 항목을 익명 처리하여 공시함으로써 개인 정보 보호와 제도 투명성의 균형을 도모한다는 방침이다.
대학 스포츠의 상업화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하지만 그 속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이런 현실은 되돌릴 수 없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무겁고 불편한 진실이 자리하고 있다. NIL 제도는 겉으로는 학생 선수의 권리를 보장하는 진일보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대학과 스포츠 산업이 책임을 분산시키며 이익은 유지하고, 리스크는 개인에게 떠넘기는 구조를 고착화할 우려가 크다. 특히 콜로라도 대학들의 비식별화 공시 방안은 정보 접근성이나 투명성보다는, 책임 회피에 가까운 행정 편의주의적 선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름을 지우고 수치를 공개하는 방식은 시스템 전반의 공정성을 따지기에는 지나치게 제한적이며, 결국 인기 있는 선수와 비인기 종목 선수 사이의 격차를 방치한 채 "수익의 비대칭 구조"를 방조하는 셈이다.
더욱이 고등학생 시절부터 “브랜드 가치”를 요구받는 환경은, 교육보다는 마케팅에 가까운 가치 기준을 정당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운동이 교육의 일부가 아닌, 상품화의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사회적 배경, 경제력, 외모, SNS 영향력 등이 실력보다 앞서 판단 기준이 된다면, 이는 스포츠를 통해 평등한 기회를 찾으려는 수많은 학생들의 노력마저 왜곡될 수 있다.
결국 NIL 제도는 제도 그 자체보다, 이를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는다. 지금처럼 각 대학이 최소한의 투명성만으로 자율 규제에만 기대어 간다면, NIL은 불평등을 확대하는 새로운 기제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진짜 변화는 화려한 스타의 사례가 아니라, 시스템의 최말단에 있는 학생 선수까지 포괄할 수 있을 때 완성된다. 그렇지 않다면, NIL 제도는 결국 또 다른 ‘불평등의 경기장’을 만드는 데 지나지 않을 것이다.
<발행인 김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