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를 아내는 산으로 가자하고, 남편은 바다로 가자고 하는 것이 갈등의 시작입니다. 산도 좋고 바다도 좋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함께 가려고 할 때 갈등이 생깁니다. 즉 갈등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깁니다. 갈등이 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내 맘대로 안 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그 사람을 계속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단어가 ‘평안’이라는 단어일 것입니다. 많은 나라의 인사말에 ‘평안’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을 씁니다. 이스라엘도 ‘샬롬(편화)’이라는 인사말을 씁니다. 이러한 인사말을 쓴다는 것은 이 세상이 평화롭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생각합니다. 평화롭지 않다는 말은 ‘갈등’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갈등’이란 단어는 한자로 ‘葛藤’이라고 씁니다. 칡 ‘갈’과 등나무 ‘등’자를 합쳐 갈등이라고 씁니다. ‘갈등’을 국어사전에서 찾으면 일이 까다롭게 뒤얽힘, 서로 불화하여 다툼이라고 나옵니다.
진태하 박사(인제대 석좌교수)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칡은 오른쪽으로 감으면서 올라가고,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으면서 올라간다고 합니다. 칡과 등나무는 방향이 서로 반대라 화합이 이뤄지지 않고 마음의 고통을 나타내는 어휘로 갈등(葛藤)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우상 동국대 교수는 “실제 칡과 등나무가 서로 엉켜 있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칡은 칡대로, 등나무는 등나무대로 자기 삶을 살고 있다. 칡과 등나무가 엉킨 것을 찾아보려고 여러 날 산을 헤집으며 다녀보았으나 찾질 못했다. 그래서 ‘숲에는 갈등이 없다’라는 엉뚱한 제목을 붙였다.”라는 글을 썼습니다.
면역과 바이러스의 상호 작용에는 기존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존재합니다. 그 중 하나가 위생가설(hygiene hypothesis)입니다. 단어만 보면 깨끗한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정반대로 지나친 깨끗함이 면역력이 약해져 오히려 병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갈등요소를 완벽하게 제거하면 평화스러울 것 같지만 위생가설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갈등요소를 완전히 제거하면 오히려 무기력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즉 세상의 모든 칡넝쿨과 등나무를 제거할 수도 없지만 제거한다고 해도 평화로운 세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갈등과 함께 잘 지내는 것이 현명하는 것입니다. 갈등은 마치 스키장의 난코스와 같이 초보자에게는 위험한 코스이지만 선수에겐 재미있는 코스인 것과 같습니다. 실력을 갖추면 갈등이 심할수록 더 재미가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숲에는 갈등이 없다는 말은 숲속에 살고 있는 나무들이 튼튼하게 자라고 있으며, 칡넝쿨이나 등나무는 오히려 시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한편으로는 칡과 등나무도 각각 나름대로 쓸모가 있습니다. 갈등요소는 나름대로 좋은 점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좋은 점에 관심을 집중하면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국 런던에 목회를 잘하는 3명의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FB 마이어 목사님과 찰스 스펄전 목사님 그리고 캠벨 모건 목사님입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마이어 목사님의 마음에 다른 목사님에 대한 질투심이 생겼습니다. ‘나는 스펄전 목사처럼 설교를 잘하지 못하고 모건 목사처럼 리더십을 갖추지 못했구나.’ 마음에 질투심이 생기자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시기와 질투를 없애 주시옵소서.” 그러나 아무리 해도 질투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던 중 하나님의 인자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 기도를 바꿔라. 질투를 없애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그들을 위해 축복 기도를 해라.”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마이어 목사님은 기도를 바꿨습니다. “하나님, 스펄전 목사님과 모건 목사님의 교회에 복을 주시어 성도들로 가득 차게 하옵소서. 그래서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사람들이 남거든 우리 교회에 보내 주시옵소서.”세 분 목사님들이 담임하던 교회는 모두 크게 성장했고 도시복음화를 위한 연합을 이뤄 하나님나라 확장에 힘썼습니다. 갈등을 이기는 방법은 상대방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갈등의 원인을 ‘죄’로 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것을 ‘죄’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야말로 갈등 없이 평화롭게 사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순서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최우선이고, 상대방의 장점을 보고 축복하는 것이 두 번째이고, 갈등을 이길 수 있도록 강해지는 것이 마지막입니다.
내가 어느 조직의 리더로써 팀원의 갈등을 코칭해야 한다면 팀원 스스로 갈등을 해결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퇴근 시간, 강북에서 강남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습니다. 그때 어떤 택시 운전사는 “1호 터널로 갈게요.”라고 말합니다. 터널이 막히지 않으면 서로 좋겠지만, 반대로 막힌다면 짜증이 날 것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운전사는 “1호 터널로 갈까요, 아니면 3호 터널로 갈까요?” 라고 묻습니다. 만약 당신이 ‘1호 터널이 낫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만약 1호 터널이 꽉 막혔다면, 당신은 “내가 가자고 한 것이니 어쩔 수 없지 뭐!”라며 본인의 판단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똑같이 길이 막혀도 받아들이는 태도는 180도 다릅니다. 왜냐하면 전자는 운전사의 ‘일방적 판단’에 의한 결과였지만 후자는 스스로 결정 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임동섭 목사
에콰도르 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