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농촌에서 태어났습니다. 바다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직접 본 적이 없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이웃 마을 친구에게 함께 바다를 보러 가자고 말했습니다. 바다를 보러 가기 위해 돈을 마련했습니다. 그 친구와 함께 ‘줄포’에 갔습니다. 줄포는 변산반도 서남쪽 해안에 있는 항구입니다. 버스를 처음 타봤습니다. 그리고 바다도 처음 봤습니다. 돌아올 버스 비를 빼니 점심을 먹을 만한 돈도 없었습니다. 돈이 모자라 찐빵 하나씩 먹고 돌아왔습니다.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경주로 갔습니다. 그때 처음 기차를 타봤습니다. 제가 탄 기차가 앞으로 가는 것이 확실하지만 느낌으로는 주변에 있는 나무가 뒤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제까지 제가 세상을 향해 갔지 세상이 나에게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버스와 기차를 탄 순간 세상이 저에게 왔습니다.

저는 요즈음 장편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소설은 조선왕조 말기에서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소설 중에 기차가 처음으로 다니던 때를 묘사한 부분을 읽었을 때 요즈음에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 당시에는 엄청난 사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804년에 영국에서 증기기관차가 발명되었습니다. 1825년에 영국은 스톡턴과 달링톤 간 기차가 상업적으로 운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는 1899년 경인철도가 개통되었습니다. 노선은 제물포 - 노량진 구간이었습니다. 같은 해(1899년)에 전차가 처음으로 운행되었습니다.

전차가 개통된 날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나왔습니다. 개통한 지 일주일 만에 어린아이가 치어 죽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가마에 치어 죽은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차에 치어 죽은 아이는 전차가 알아서 설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전차가 살인기계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와 시민들은 도끼로 전차를 때려 부수고 불을 질렀습니다. 이 사건을 겪은 후 사람들은 저런 기계는 사람이 피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기차에는 늙은이와 젊은이가 함께 탑니다. 양반과 상놈이 함께 탑니다. 남녀가 함께 탑니다. 기차를 탈 수 있는 조건은 오직 차비를 내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돈을 내도 같은 공간에 신분이 다른 사람이 같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기차는 빠른 이동 수단일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일등석과 이등석은 신분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요금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돈이 신분이 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기차표를 파는 창구에서는 신분을 물어보지 않습니다.

1902년 고종이 51세 때 큰잔치를 열기로 했습니다. 그 해가 고종이 즉위한 지 40년이 되었고, 환갑(60세)을 바라보는 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평민은 60세(환갑)가 되면 노인으로 대접을 받기 때문에 환갑이 되기를 고대했습니다. 노인이 되면 노역이 면제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왕은 평민하고 다르게 51세가 되면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라고 큰잔치를 열었습니다.

그래서 고종은 이 잔치에 자동차를 들여오려고 했습니다만 다음 해(1903년)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1915년에 민간인으로는 최초로 캐딜락 리무진 자동차를 들여온 사람은 손병희 씨였습니다.

1915년 자동차 법규가 제정되었습니다. 법규 중에 특이한 조항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본다면 ‘바퀴는 고무로 해야 한다, 후진할 수 있어야 한다, 말과 소를 놀래게 해서는 안 된다’와 같은 조항들입니다.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길에 대한 개념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 소, 말 그리고 수레가 같이 다녔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차가 도로의 중앙을 차지하고 사람은 작은 길로 다니게 되었습니다. 마치 길은 운하와 같이 되었고, 횡단보도는 운하의 다리처럼 되었습니다.

위와 같은 대중교통은 인사말도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진지 잡수셨습니까?’ 라고 인사를 했지만 지금은 아이들에게는 ‘차 조심해라’ 어른들에게는 ‘별고 없으셨습니까?’ 라고 합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게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대중교통의 발달은 공간에 대한 개념도 바꾸었습니다. 대중교통은 이동 거리가 늘어나게 했습니다. 이로 인해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대중교통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도록 했습니다.

예전에는 성(城)안에 사람들은 인(人)이라고 불렀고, 성 밖에 사는 사람들은 민(民)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전의 성(城)은 요즈음은 도시라 할 수 있습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은 정치인, 기업인으로 부르고, 도시 밖에 사는 사람은 농민, 어민으로 부릅니다.
당시에 성안에 사는 사람들은 10%정도였습니다. 요즈음은 성안(도시)에 사는 사람이 80%정도입니다. 예전의 농민들은 먼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평생 동안 만나는 사람 수가 2천 명 정도라고 합니다. 지금은 지하철에서 만나는 사람만 해도 하루에 천명은 될 것입니다.

대중교통과 같이 예수님은 저를 여러 가지를 변하게 하셨습니다. 믿음은 제가 천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이 제게로 다가오게 했습니다. 믿음은 저의 신분을 바꾸었습니다. 믿음은 저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성스러운 무리(성도)에 포함시켰습니다.

세상은 엄청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를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묻기 전에 오히려 변하지 않는 진리를 먼저 찾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에콰도르 선교사
임동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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