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을 앞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불법 총기 소지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은 자신의 아들을 전격 사면했다. 가족을 절대 사면하지 않겠다던 국민과의 약속을 깬 것이다. 이를 둘러싼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사면이 실행되면 헌터는 현직 미 대통령 자녀로는 ‘첫 기소’에 이어 ‘첫 사면’ 기록까지 쓴다. 트럼프 당선인은 “사법권의 남용”이라고 맹비난 중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무리한 사면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갑작스러운 아빠 찬스로 인해,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이 도덕성에서도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채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모습이다.
추수 감사절 연휴 마지막 날 저녁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차남 헌터 바이든 사면을 전격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들에 대한 수사와 기소가 자신을 노린 정치적 목적에서 이뤄졌다고 주장하며 사면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또 아버지이자 대통령으로서 사면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을 이해해 달라고 호소했다.
헌터는 2018년 총기 구매 당시 연방 서류에 약물 사용에 대해 거짓말을 한 혐의로 지난 6월 유죄 평결을 받고 이달 12일 선고 공판을 앞두고 있었다. 지난 9월에는 마약, 성 매매, 사치품에 호사스럽게 돈을 쓰면서 140만달러의 세금을 내지 않은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를 스스로 인정했고, 이달 16일에 선고가 예정돼 있었으며, 유죄 판결시 최대 42년 형에 처할 위기에 있었다. 이날 바이든은 아들에 대한 사면 범위에 이미 유죄로 판단돼 형량 선고를 앞둔 이 두 개 사건만이 아니라‘2014년 1월 1일부터 2024년 12월 1일까지 범한 다른 범죄’모두를 포함시켰다. 향후 추가 기소를 염두에 두고 '선제 사면'이라는 노림수를 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 대통령은 헌법상 광범위한 사면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헌터에 대한 사면권 행사 질문이 나올 때마다 사면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해 왔다. 지난 6월 ABC와의 인터뷰에서, 배심원단의 평결이 무엇이든 받아들일 것이냐 라는 질문에 “그렇다, 아들 사면은 배제했다”고 명확히 답했다. 이후로도 바이든은 사면은 없다고 강조해 왔으며, 지난달 대선 이후에도 같은 입장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임기 약 1달 반을 남기고 그 약속을 뒤집어버렸다. 헌터는 지금까지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켜 바이든의 ‘아픈 손가락’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탓에 선거 때마다 헌터는 공화당 진영의 집중 공격을 받아 왔다. '헌터는 어디 있나?' 라고 끊임없이 공격해 왔던 트럼프가 이번에 약속을 깬 바이든을 그냥 두고 볼 리 없다. 사법권 남용이라고 비난하면서, J-6 인질도 사면되느냐 고 되묻고 있다. 참고로 J-6 인질은 2021년 1월 6일 의회 폭동에 가담했다가 수감된 트럼프 지지자들을 말한다.
트럼프 뿐만 아니라 미 정계 안팎에서도 바이든의 이런 행보를 두고 잡음이 일고 있다. AP통신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첫 임기 이후 법치에 대한 존중과 규범을 회복하겠다고 약속했던 바이든 대통령은 결국 아들을 돕는 데 지위를 이용했고, 미국인들에게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했던 공적 약속을 저버렸다"고 크게 비판했다.
사실 미국의 역대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가족을 사면한 것은 바이든이 처음은 아니다. 트럼프는 사돈을,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이복 동생인 로저 클린턴을 퇴임 직전에 사면한 적이 있다. 문제는 대통령이라는 직위가 가족의 안위와 번영을 위해 역할을 했다는 데 있다. 그리고, 바이든의 아들 사면에 대해 맹렬히 비판 중인 트럼프 당선인 또한 가족 우선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트럼프는 첫 임기를 1개월 앞두고 사돈인 부동산 개발업자 찰스 쿠슈너를 사면한 바 있다. 쿠슈너는 2005년 16건의 탈세 혐의, 1건의 연방 증인에 대한 보복 혐의, 1건의 연방 선거관리위원회 거짓말 혐의로 2년형을 선고 받았었다. 그는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의 시아버지다. 트럼프는 이런 쿠슈너를 지난 주 자신의 2기 행정부의 주 프랑스 대사로 임명했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는 중동·아랍 문제 담당 고문으로 또다른 사돈인 마사드 불로스를 지명했다. 마사드 불로스는 2022년 아들 마이클이 트럼프 당선인의 둘째 딸 티파니와 결혼하면서 트럼프와 사돈 관계가 됐다. 레바논 출신의 사업가인 그는 대선 때 아랍계 유권자에게 트럼프의 휴전 의지를 전하며 표심 공략에 힘썼다는 전언이다. 트럼프의 가족 챙기기는 이번 만이 아니다. 집권 1기 당시 첫째 딸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를 백악관 선임보좌관으로 기용했으며. 이번 대선 때는 첫째 아들 트럼프 주니어와 차남 에릭이 핵심 대리인으로 일했다. 에릭의 부인인 며느리 라라도 공화당 전국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선거운동을 도왔다. 참고로 세 차례 결혼한 트럼프 당선자는 3남 2녀를 두고 있다. 이처럼 트럼프는 집권 1기 때처럼 가족을 정부 주요 자리에 앉히는, 일명‘가족 정치’를 2기 행정부에서도 이어갈 전망이다. 이처럼 트럼프 역시 가족에게 과도한 정치적 역할을 맡긴 만큼, 이해충돌 논란과 족벌주의 논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한국 대통령도 헌법 79조에 의해 ‘특별사면’ 권한을 갖는다. 사면 대상을 법으로 제한받지는 않지만, 직계혈족을 직접 사면한 사례는 없었다. 또한 트럼프처럼 대놓고 가족을 공식적으로 등용한 적도 없다. 어찌되었든, 바이든의 이번 결정은 아버지로서 공감할 수 있지만, 대통령으로서는 왕권 국가에서 비롯한 시대착오적인 권력이행이라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듯 하다. 바이든의 아들 사면, 트럼프의 가족 사면과 기용은 분명한 권력남용이다. 세계를 놀래키고 있는 이들의 ‘네포티즘(nepotism·족벌주의)’이 민주주의의 상징인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발행인 김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