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하루를 앞두고 이번주 칼럼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아프리카ㆍ인도계 부모를 두고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검사 출신 여성 카멀라 해리스 대 백인들만 모여 사는 동부 뉴욕 부촌에서 태어나 부동산ㆍ카지노 사업가 출신 남성 도널드 트럼프, 공통점은 거의 없고 모든 면에서 극과 극인 두 사람이다. 이렇게 극과 극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을 지지하는 미국 사람들도 딱 반반인 것을 보면, 어느 누가 승리를 하든 미국 사회는 또다시 두쪽으로 갈라질 것이다. 대결 자체가 초접전으로 흐르는 데다 후보 간 네거티브 공격이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양측 간 대립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이미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한 두 차례 암살 시도가 발생한 터여서 대선 이후로도 심각한 후유증이 예상된다. 

 대선 전날까지도 초접전 양상을 펼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7개 경합주에서 오차범위 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발표되었다. 다만 격차가 1~2% 포인트에 불과해 사실상 예측불허이다. 올 한해 동안 이 두 대선후보들로 인해 미국은 젠더와 인종, 학력 등의 3대 내전이 이어져왔다. 그리고 가장 잔인한 선거로 평가받으며, 누가 이기든 후폭풍에 대한 걱정이 적지않다. 양쪽 진영간의 골이 깊어지면서 물리적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18~21일 유거브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의 84%는 ‘10년 전보다 미국이 더 분열됐다’고 답했으며, 27%는 대선 과정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크거나 어느 정도 크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선 후보 TV 토론 진행 경험이 있는 CNN 앵커 데이나 배시는 지난 9월 펴낸 책 『미국의 가장 치명적 전쟁』에서 “1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인종 간 폭력사태로 이어진 1872년 루이지애나 주지사 선거와 오늘날 우리가 겪는 균열 사이의 놀라운 유사성은 충격적일 정도”라며 “싸우자(Fight)를 외치며 상대를 파멸시켜야 할 적으로 보는 미 역사상 가장 잔인한 선거가 벌어지고 있다”며 이번 선거가 제2의 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 시사한 바 있다.

필자의 한 지인은 오늘 워싱턴 방문일정을 취소했다. 예정대로라면 5일간 워싱턴에 머물 계획이었지만, 자칫 폭동 등의 소요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뉴스가 나오자 일정을 취소했다. 비행기표와 호텔까지 3천달러의 비용을 날린 셈이다. 문제가 생길 것같은 근처에는 가지 않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대선을 하루 앞두고, 여러 미디어에서는 백악관을 중심으로  스산한 분위기를 일제히 전하고 있다. 평소보다 많은 경찰차가 배치되어 있고, 비밀경호국 문구가 새겨진 검은 색 복장의 요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거리를 순찰하고 있다. 경찰 3300명이 휴가를 포기한 채 백악관·의회 의사당을 중심으로 거리 곳곳에 투입된 상태다. 백악관 근처의 음식점과 상점입구에는 성인 남성 키만한 높은 철제 펜스나 나무 합판이 설치되었고,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인‘더 피플스 하우스 박물관’의 기념품 판매장은 아예 문을 닫았다. 백악관에서 북쪽으로 두 블럭을 가면 있는 편의점 체인 CVS는 1층 전면에 가로 50m에 이르는 대형 합판이 설치돼 ‘요새’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프랭클린 공원 일대의 가게들도 겉으로만 봐서는 영업 중인 건지 공사 중인 건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다. 약 4년 전 트럼프에 선동된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지자들의 습격을 받았던 의회 의사당(capitol Hill)의 분위기도 삼엄하다. 대부분의 상·하원 건물에는 차량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고, 바로 앞에 있는 연방대법원도 철제 펜스가 설치됐다. 

이처럼 미국 수도 워싱턴DC는 마치 전쟁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1968년 4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 암살, 2017년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 2020년 5월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2021년 1·6 의회 습격 사태 등 미국 현대사의 변곡점마다 워싱턴에선 크고 작은 시위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워싱턴 시내의 상점들이 애꿎은 분풀이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번 대선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소셜미디어 등에서 폭동을 모의하는 정황들이 나타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극렬 지지 단체인 ‘프라우드 보이스’ 회원들이 내전을 위한 총기 준비, 부정투표 가담 이주민·선거관리인 사살 등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극단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보도했다. 참고로 ‘프라우드 보이스’의 일부 회원들은 1·6 사태 때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다.  

  '운명의 날' 을 앞둔 워싱턴은 숨죽이고, 무사히 대선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나라도 한때 데모시위를 했었다. 심각할 때는 체류탄도 난무했고, 경찰과 시위대의 무력 충돌도 잦았다. 하지만 문민정부 이래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해왔고, 이 부분만큼은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뜻을 잘 이어가는 국가라는 자부심이 생겼다.
 그런데 전세계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고 존경받아야하는 정권 이양 과정이 언제부턴가 험상궂어졌다. 위대한 대통령을 뽑는 과정이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폭동을 모의하고, 상대 후보를 시해하려하고,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만드는 과정으로 굳어져버렸는지,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미국의 대선 과정이 참으로 낯뜨꺼워졌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기에 웃어넘기는 상황들에 자주 처한다. 대선후보도,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그런 식이다. 상대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악마화하는 극한 적대감은 증오정치를 파생시켰다. 이는 미국이 지켜온 민주주의의 모습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대부라고 불리는 미국이야말로 평화로운 정권 이양의 모습을 전세계에 보여주길 바란다.       
<발행인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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