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똑같은 수준으로 사망에 악영향을 미친다!” “의료계는 이제 외로움을 전염병이라고 말한다!(워싱턴 포스트)“ “젊은이가 노인보다 외로움을 더 많이 느낀다!(USA 투데이)” “중년 남성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흡연이나 비만이 아닌 외로움이다!(보스턴 글로브)” “외로움이 건강에 미치는 놀라운 영향!(뉴욕 타임스)” “사회적 고립이 우리를 죽이는 방법!(뉴욕 타임스)” “사회적 고립이 비만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슬레이트)” 위와 같은 헤드라인을 봤을 것입니다!
이번 주는 추석 연휴 기간입니다. 이러한 명절에 더 외로움을 타는 분들이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외로움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1년 4월 시장조사기업 ‘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87.7%가 외로움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외로움 문제를 사회나 국가의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실제 영국은 2018년 1월,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직을 신설하고 사회체육부 장관 겸직으로 임명했습니다. 일본 역시 코로나19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이 급증하면서 2021년 2월 ‘고독·고립 담당 장관’을 임명했습니다. 2023년 11월 세계보건기구(WHO)도 외로움을 세계 보건 위협으로 규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담 국제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외로움을 줄이는 일이 의료비는 물론 교통사고와 범죄, 극단적 선택을 줄이는 것과 직결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혼자인 것과 외로운 것은 다른 것입니다. 혼자인데도 외롭지 않을 수 있고 군중 속에서도 외로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외로움은 마음의 상태입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된 느낌이 가져온 감정입니다. 외로운 사람에게는 고립감이 굉장히 깊게 느껴집니다. ‘이 세상에서 혼자다, 친구가 없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다, 내가 죽더라도 아무도 관심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만큼 더 서글픈 생각은 없을 것입니다.
사회가 최첨단의 문화를 추구할수록 이 ‘외로움’의 문제는 심각해지는 듯합니다. 원인을 찾아본다면 아마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 중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개인주의’가 아닐 까 생각해 봅니다.
일본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고독사’입니다. 누군가 돌봐줄 사람이 없어 쓸쓸하게 홀로 죽어 간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이 ‘고독사’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죽기 전에 베갯머리에 붙은 벨을 누르면 즉시 병원과 경찰서로 연결되는 ‘안심전화’가 유행을 하고, 노인들의 손목에 ‘신체상태 자동감지기’가 달린 시계가 등장하여 맥박이 멎거나 불규칙하면 병원으로 자동 연결해주는 도구들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볼링도 함께 치다가 혼자 치는 사람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홀로 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혼자 밥을 먹으며, 홀로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봅니다. 소셜미디어가 넘치는 이제는 아예 볼링 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저 화면을 바라보면서 혼자 스크롤 할 뿐입니다. 이 모두가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외과의사 ‘비벡 머씨(Vivek Murthy)’ 박사는 외로움을 전염병이라고 부른 최초의 인물입니다. 머피는 외로움이 만성 염증과 심장병, 관절염 및 당뇨병을 증가시키는 ‘교활한 유형의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그는 심장병에서 음란물 사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형의 병들의 근원은 외로운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첨단시설들과 문화가 생겨난다고 해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또 다른 문제만 만들어낼 뿐입니다. 그렇다고 현 시대를 비판하며 다시 과거로 회귀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아니 오히려 이런 쉽게 홀로될 수 있는 사회 속에서 누릴 수 있는 복을 찾아야 합니다.
기독교 신학에서는 ‘인간은 관계적 존재!’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외로움은 육체적 질병으로 발전하는데, 이에 대한 치료 방법은 약이 아닌 우정이라고 신학자들은 주장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완전한 관계의 모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기도문 안에 특별한 두 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아버지’와 ‘우리’ 라는 단어입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 라고 부릅니다. ‘나의 죄’가 아니라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 모델은 ‘사랑이 넘치는 가족 공동체!’ 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족 공동체 안에는 외로움을 느낄 수 없게 됩니다.
외로움의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크리스천의 치료법은 언제나 같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위로가 되는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교제하려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이 있어야 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는 성경(요1:12)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이는 교회에서 친교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소그룹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먼저 웃으면 거울도 웃습니다! 내가 먼저 전화하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면 외로움 대신 기쁨이 넘치리라 생각합니다!
에콰도르 선교사 임동섭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