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글라이딩을 시작한 것은 대학교를 졸업하던 해였다. 직장을 구해야 했는데 막상 취업전쟁에 뛰어들어 성공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수업을 밥 먹듯이 빠졌고, 휴학도 했고, 일 년의 절반이상은 배낭을 매고 세계를 헤매면서 돌아다녔다. 그 동안 동기들은 군대를 가거나 졸업을 했고, 아니면 유학을 간 탓에 졸업 당시 내가 아는 동기는 거의 없을 정도였다. 이런 불성실한 대학교 생활의 결과는 바로 학점이 대변했다. 한국에서 취직을 하려면 최종학력 성정 증명서가 필수다. 이 때문에 졸업을 앞두고 답답했다. 취업을 하자니 학교 성적이 엉망이어서 자신이 없고, 그렇다고 백수가 될 수도 없고, 결국 나의 선택은 대학원이었다. 대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최종학력은 대학원 성적이 되는 것이니까 기를 좀 펼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소심한 생각의 발로였다. 이렇게 취업 전쟁이라는 현실을 도피한 결과는 한동안 술을 마시기 위한 변명으로 작용하곤 했다. 자신 없는 내 삶이 들킬까 봐 고심했던 때였다.
이런 고민들을 더 이상 들키지 않고 스트레스도 풀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것이 패러글라이딩 이었다. 뭔가에 빠져서 인생을 열정적으로 바꾸고 싶었다. 그때부터 필자는 내 삶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곳, 구름만 날고 있는 하늘 위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동강이 흐르는 계곡을 눈 아래 두고 온 몸으로 바람을 느낄 때면, 귓전에 스치는 바람소리는 새의 날개 짓 같은 자유를 속삭였다. 그러면서 자연의 위대함 앞에 스스로 작아지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나의 결정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탈수도 있고, 패러글라이딩을 할 수도 있고, 낙하산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각각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패러글라이딩은 날 수 있을 단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지상훈련이 필요하다. 일단 달리기는 필수다. 주로 경사면을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하고 날개인 캐노피를 끌어올리는 라이업 단계를 익혀야 한다. 이외 가장 중요한 것은 착륙방법이다. 4주 동안의 지상훈련을 마치고 처음 하늘을 나는 날이었다. 동호인끼리는 이를 첫경험이라고 불렀고, 이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짜릿함에서 기인된 듯하다. 대부분 비행은 경기도 산골에서 진행됐다. 나의 첫 날도 어느 시골 산등성이 위에서 이뤄졌다. 막상 이륙장에 올라선 나는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분 후 나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유는 잠시, 거름으로 가득 채워진 논 바닥에 착륙했다. 냄새도 냄새였지만 무거운 날개를 짊어지고 있는 탓에 다리는 점점 바닥으로 깊이 박혀 들어갔다. 함께 간 회원 중 넷이나 동원되어서야 나를 끌어낼 수 있었다. 당시 잘난 척 한답시고 입고 나갔던 비싼 게스 청바지는 다시는 입을 수 없게 됐다. 허벅지까지 묻은 거름은 말라서도 좀처럼 털어지지 않았고, 빨아도 얼룩이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았다. 기대했던 나의 첫경험은 이렇게 망신스럽게 끝이 났다. 하지만 이때 일로 인해서 필자는 이를 악물고 착륙시 자세와 갑작스런 골바람에 대처하는 비행 방법을 열심히 공부했다. 3여 년이 훌쩍 지난 뒤에 나는 동호회원 중 그나마 조금 탄다는 부류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신출내기를 훈련하는 선배가 됐다. 나의 첫 제자는 마흔을 바라보던 직장인 아저씨였다. 그의 첫 경험 날, 나는 무선 호출기로 조정 방향을 잡아주면서 코치 했지만 그는 결국 착륙장과 멀리 떨어진 야산에 앉았다. 소 똥 위에 주저 않은 그를 바라보면서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의 운동화 깊숙이 들어간 이물질은 회식 자리 내내 우리의 코를 고생시켰다. 하지만 동호회 대장은 그를 비아냥거리는 필자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네 첫날을 기억해, 네가 밟은 똥은 네 제자의 몇 배는 됐다”고 말이다. 잊고 있었다. 필자가 더 많은 똥 구더기에 빠졌던 일을 말이다.
패러글라이딩을 타다가 일어난 일들은 예전에도 소개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요즘 그 중 첫경험의 일화가 유독 생각나는 건 얼마 전에 만난 한 사람 때문이다. 자신이 빚진 100은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이 받아야 할 1만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충분히 화나게 만들어 놓고는, 자신에게 소리친다고 되려 화를 내는 사람들 말이다. 대접받을 수 없는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접해주지 않는다고 오랫동안 삐치는 사람들 말이다. 더 큰 제 흉은 모르고 남의 작은 잘못만 흉본다는 뜻인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이 딱 맞다. 속담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로 반성하는 자세와 솔직한 모습이 필요하다. 그렇게 한다면 적어도 욕은 들어 먹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자신이 대접받는 길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