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비전교회 이동훈 공동 담임목사

  신약 성경 야고보서는 ‘시험’에 관한 두 가지 측면을 언급합니다. 먼저 ‘시련(Test)으로서의 시험’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야고보서1:12). 그리고 또 다른 측면의 시험은 ‘유혹(Temptation)으로서의 시험’입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야고보서1:13). ‘시련으로서의 시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해 주시는 시험입니다. 그리고 ‘유혹으로서의 시험’은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여 넘어지게 하는 시험입니다. 야고보는 이 ‘시련으로서의 시험’이 우리에게 주어질 때 잘 참아야 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고 격려합니다.  

  시련이 복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참는 일, 견뎌내는 일이 필요합니다. 참아내지 못하면 그 시련이 결코 복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에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참고 견뎌내지 못할까요? 야고보는 그것이‘자기 욕심’(own evil desire)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야고보서1:14) 이 욕심은 ‘Test로서의 시험’을‘Temptation으로서의 시험’으로 전락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이 욕심은 또한‘건전한 욕구’와 구별됩니다. 인간은 욕구를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배고프면 먹고 싶은 욕구, 졸리면 자고 싶은 욕구,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귀고 싶은 욕구, 이것들은 결코 죄가 아닙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왜 죄가 됩니까? 먹는 것이 탐식으로 바뀌고, 자는 것이 게으름으로 바뀌고, 상대방의 성적인 순결을 강제로 빼앗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건전한 욕구에 욕심이 발동하면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욕심(육신적이며 악한 욕망)을 이렇게 정의 할 수 있겠습니다. 욕심이란‘통제되고 다스려지지 않은 욕구’입니다. 누군가 ‘욕구는 나의 종이 되어야지,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욕심은 욕구를 선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악하게 사용하여 ‘통제 불능의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기 위해 사탄이 놓은 미끼와 덫과 같은 구실을 합니다. ‘끌려 미혹됨이니’라는 표현은 잘못된 대상을 향해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려가는 것이며, 잠시의 쾌락에 눈이 멀어 나를 유혹하는 것인지도 모른 채 그 미끼들을 덥석덥석 물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욕구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통제하지 못해서 ‘욕심에 끌려 미혹’된 결과가 무엇입니까?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야고보서1:15). 한마디로 사망입니다. 욕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범죄한 결과는 사망입니다. 그런데 바로 사망이 아닙니다. 사망에까지 이르는 과정이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습니다. 그런데 죄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죄는 자랍니다. ‘장성한즉’이라는 표현이 무섭습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는 법입니다. 사람이 죄를 짓게 되는 모습을 보면 처음에는 호기심 때문에 ‘한번 해 볼까?’하고 행동에 옮깁니다. 그런데 죄지으러 가는 길에는 브레이크가 없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쾌락’ 때문입니다. 죄에는 쾌락이 있습니다. 죄짓는 순간의 스릴, 모험, 서스펜스가 가져다 주는‘쾌락’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을‘죄악의 낙’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히브리서11:25) 이 ‘죄악의 낙’을 즐기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짓는 일은 반복되고, 습관이 되고, 결국 그 죄는 장성해서 내가 스스로 그것을 컨트롤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 쾌락이 이끄는 대로 나를 방치하게 됩니다. 결국 사망입니다. 사탄은 항상 바로 눈앞의‘잠시’만을 보게 합니다. 욕심의 결과와 그 끝을 보여 주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속는 것입니다. 죄악의 낙이 가져오는 결과, 그 끝을 볼 수만 있다면 우리의 태도와 자세가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우리는 두 가지 영적인 공식 가운데서 살아갑니다. 하나는 ‘사망의 공식‘(15절)이고, 또 하나는 ‘생명의 공식’(12절)입니다. 12절을  15절식으로 풀이해 보면 ‘믿음이 잉태한즉 인내를 낳고 인내가 장성한즉 생명을 낳느니라!’가 됩니다. 결국‘사망의 공식’을 적용하며 사느냐, ‘생명의 공식’을 적용하며 사느냐는 우리들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믿음으로 당하는 시련을 잘 참고 견디면 생명입니다. 그러나 한 순간 욕심의 미끼를 무는 순간 파멸입니다. 

  참고 견디어 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허락하신 욕구인 ‘건전한 욕구’들을 내 삶 안에서 균형 있게 관리하고 통제하는 일들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성령님을 의지해야 하고, 성령 충만함을 구해야 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또한 저급하기 짝이 없는 욕구들의 노예가 되어 끌려다니는 삶이 아니라 좀 더 수준 높고 거룩한 욕구, 즉 하나님을 알아가고, 성경을 알아가는 욕구들로 내 삶을 채워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참고 견뎌내지 못하게 하는 욕구관리를 잘하고 삽시다. 생명의 면류관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순간을 위해, ‘찰라’를 위해, 살지 말고 영원을 바라보며,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갈 일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사는 데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기다리고 참고 견뎌내는 인내의 삶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산다고 말합니다. 잘 관리된 욕구는 분명히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통제되지 못한 욕구는 나를 파멸의 유혹으로 이끄는 사망의 올무가 됩니다. 시험을 참고 견뎌낸 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축복이 있음을 믿고 오늘도 순간이 아니라 영원을 위해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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