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편지 / 한용구 목사
저는 은퇴 후에 여기저기, 부름을 받아서 말씀 전하는 사명을 힘쓰고 있습니다만, 함양 기독교 연합회 부활절 예배, 진주 노회 장로님들 수련회, 이번 주엔 울산 강남교회 2부 3부 예배를 함께 드리도록 되어 있지요. 그런데 고민이 있습니다. 처음 뵙는 분들의 마음과 시선을 집중시키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는 고민입니다. 더구나 장로님들 수련회 같은 경우는 이미 수십년 설교를 듣고 성경공부를 하신 장로님들인데, 척하면 아는 분들이어서 집중시키는 일이 참 고민이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제 하나 터득한 것이 있습니다. 어느 모임을 가든지 처음은 세계인들의 공통어인 감탄사‘으와’로 시작하는 일입니다. 이 감탄사를 연습하면 마음과 시선을 집중시키는 데 아주 효과적이란 사실을 깨달은 거지요.
요한 하리라는 분이 ‘도둑 맞은 집중력’이란 책을 냈습니다. 의미심장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콕콕 찍어 내는 듯한 통찰력을 갖고 있는 책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지금 현대인들에게는 좋은 것이 너무 많아요. 특히 핸드폰이 사람들의 집중력을 흔들고 있다는 겁니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집중력을 쏟다보니 정말 집중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힘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눈을 뺏기고 마음을 뺏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중한 집중력을 도둑맞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공부하는 학생들, 말할 것도 없이 집중력에 달려 있습니다. 운동 경기를 중계할 때에도 집중력 싸움이라는 소리를 종종 듣지요.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신앙도 예배도 기도도 집중력 싸움이지요. 오늘은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면서 십자가에 나타난 주님의 집중력을 살피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주님의 십자가에 나타난 집중력은 처음부터 십자가로 결정하고 가신 일이었습니다. 가면서 봐서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으면 가고 안되면 말고가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십자가였습니다. 처음부터 죽음이었습니다. 그걸 아시면서도 결정하고 가셨습니다. 우리가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한 주간을 이렇게 살기로, 예배를 드리면서 결정하고 살아갈 것입니다. 하루는 잠에서 깨자마자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이렇게 살기로 결정하고 살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우리도 훈련해야지요.
둘째, 십자가에 나타난 주님의 집중력은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않는다.’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배척한다고? 야고보와 요한이 하늘에서 불을 내릴까요? 했지만 주님은 단호히 꾸짖으셨지요. 기분 나쁘다고 하다가 정말 중요한 일을 망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요? 정말 조심할 것입니다. 셋째, 십자가에 나타난 주님의 집중력은 말씀이 책망하는 걸 즐거워하는 일이지요. 다행히도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의 책망을 잘 받아 들였지요.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말씀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고 순종하는 일이지요. 말씀의 검을 들고 내 기분과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지요. 주님은 40일 금식하시고 돌을 명하여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마귀의 시험도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으로 모든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말씀의 집중력이 최고지요.
넷째, 십자가에 나타난 주님의 집중력 네 번 째는 그 다음을 알고 가셨습니다. 십자가는 고난과 고통이지만 그 다음은 부활이고 그 다음은 하늘나라임을 이미 알고 가셨습니다. 베드로가 십자가 앞에서 3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지만 그를 쫓아 가셔서 회복시키심도 베드로의 그 다음을 아셨던 것이지요.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을 부르신 이유도 그 다음은 바울 사도가 될 것을 이미 내다 보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혹시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의 근거는 그 다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 십자가의 길을 가신 주님의 집중력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삶을 점검하며 훈련할 것입니다. 믿음도 집중력에 달려 있으니까요.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것에 집중하면서 승리하시기를 삶이 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