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 김건희 여사가 재미 교포 최재영 목사로부터 명품 가방을 받아 청탁금지법을 어겼다며 참여연대가 신고한 사건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가 사건을 수사 기관 등에 넘기지 않고 종결하기로 했다. 사건 신고가 접수된 지 약 반 년 만이다. 이로인해 권익위가 시간을 끈 뒤 대통령 부부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승윤 권익위 부위원장은 10일 브리핑을 열고 “대통령 배우자에 대해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등의 배우자 제재 규정이 없기 때문에 종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권익위는 윤석열 대통령, 김 여사에게 가방을 건넨 최재영 목사 관련 신고도 종결 처리했다. 앞서 참여연대는 지난해 12월 윤 대통령과 김 여사, 최 목사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권익위에 신고했다. 인터넷 매체 ‘서울의 소리’가 최 목사가 김 여사에게 300만원 상당 명품 가방을 전하는 모습을 공개한 데 따른 것이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논란이 발화할 때마다 김정숙 여사를 둘러싼 논란도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지난해 7월 김건희 여사가 유럽 순방 중 명품 매장을 방문한 것을 민주당이 문제 삼자, 보수 성향 정치인 등이 과거 김정숙 여사의 의전비용 논쟁을 언급하며 반격에 나섰다. 

    한동안 잠잠하던 정치권에 김정숙 여사의 이름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재임 당시 외교 비화를 담은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를 펴내면서 다시 소환되었다. 문 전 대통령은 책을 통해 김정숙 여사의 인도 타지마할 단독 방문(2018년)에 대해 “영부인의 첫 단독외교”라는 입장을 처음으로 내놨다. 그러나 김 여사의 인도 방문을 놓고는 정치권 안팎에서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거셌다. 국민의힘도 문 전 대통령의 ‘회고록 해명’을 난타했다. 나아가 유력 당권 주자 중 한 명인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4일 이른바 ‘김정숙 여사 특검법’까지 발의했다. 김정숙 여사의 인도 방문과 의상 구매 관련 국정원 특수활동비 대납 의혹 등을 규명하자는 게 특검법의 골자다. 당초 2600만원이면 됐을 예산이 대통령 휘장을 단 전용기를 이용하며 15배인 3억7000만원으로 늘어났는데 이 가운데 무려 6292만원이 기내식 비용으로 사용됐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대통령 배우자 리스크가 연일 정치권을 흔들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대통령 배우자를 전담하는 제2부속실을 재설치하거나 대통령 배우자의 법적 지위와 지원을 명문화한 배우자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 배우자법은 딜레마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가 지도자의 배우자로서 외교 순방 동행 등 일정 역할을 수행하고 이에 따른 지원 및 의전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선출된 공직자가 아닌 인물에게 법적 역할과 지위, 그에 따르는 지원을 규정하는 법률을 만드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지적이다. 

    다른 나라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2017년 7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 따라 자신의 부인에게 공식적인 영부인의 지위를 부여하려 시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별도 예산 배정 없이 영부인의 공식 역할과 업무를 규정하는 '국가원수 배우자의 지위에 관한 투명성 헌장(투명성 헌장)'을 발표했다. 대통령 배우자의 역할을 ▲국제회의 동행 ▲국민과의 소통 ▲엘리제궁 행사 감독 등으로 한정하고, 대통령 배우자 비서실 설치와 경호 지원 등을 공식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대통령 배우자의 활동에 대한 보수나 사례금 지급은 금지됐다.

    대통령 배우자의 법적 지위를 인정한 국가도 있다. 미국은 1993년 항소법원 판례에 따라 대통령 배우자가 사실상 정부의 공무원 또는 직원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또 1978년 제정된 미국 연방법 제3편 제105조는 대통령 배우자가 대통령 임무 지원하는 경우 대통령에게 승인된 지원을 대통령 배우자에게도 제공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규정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조차 영부인의 역할을 둘러싼 논쟁은 있다. 1981~1989년 재임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은 전통적인 내조형에서 벗어나 인사 관련 건의를 하는 등 국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논란이 됐다.

     대통령 배우자를 둘러싼 논란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1965년부터 1986년까지 필리핀을 통치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배우자 이멜다는 구두 수천 켤레를 수집하는 등 사치스러운 생활로 구설에 올랐다. 1986년 민중 봉기로 마르코스 일가는 미국 하와이로 망명했는데, 당시 대통령궁에서는 마르코스 일가가 두고 간 수많은 금과 보석, 명품 의복 등이 쏟아져 나왔다. 국가 정상급 지도자의 남성 배우자, 즉 퍼스트 젠틀맨이 도마 위에 오른 사례도 있다. 지난해 8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사실혼 관계였던 안드레아 잠브루노는 TV뉴스 쇼를 진행하면서 젊은 여성들에게 술에 취하지 않으면 성폭행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해 거센 반발을 샀다. 이 밖에도 여성 동료에게 음담패설을 했다는 추문에 휩싸였고, 멜로니 총리는 지난해 10월 그와 결별했음을 알렸다. 그래도 한국의 경우는 이정도는 아니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놀라는 광경이 있다. 강남 사거리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여성들 중 절반 이상이 명품백을 들고 있었던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샤넬과 루이비통 샵의 계산대에는 우리 동네 월마트에서 계산을 기다리는 사람들보다 더 많았다. 이런 명품제품 구매가 일반화된 한국사회에서 대통령 부인이 명품가방을 선물 받았다는 것을 가지고, 반년이상 전세계 미디어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김정숙 여사 건도 남편인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가는데, 아내가 함께 가면 대통령의 마음도 안정되어서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부부가 함께 가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우리나라 뿐일 것이다. 대통령 혼자 가도 되는데 아내가 따라가서 밥값이 많이 나왔고 혈세를 낭비했다는 논리는 상식적이지 않다. 혼자 가는 것이 더 이상해 보인다. 국민의 세금은 더 많은 곳에 허투루 쓰이고 있다. 국회의원들의 월급도 그럴 것이다. 영부인이 비싼 가방을 받았고, 비싼 의전비용을 사용했다는 것에 대한 지나친 비난은 우리나라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마치 남자들끼리의 감정싸움을 아내들한테 꼬투리 잡는 모양새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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