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유권자들의 관심이 여느 때보다 높았던 22대 대한민국 총선이 민주당의 압승, 국민의힘의 참패로 끝났다. 민주당은 지역구 의석만으로 과반을 달성했으며, 지역구와 비례 위성정당 의석을 합쳐 175석을 얻어, 입법 권력을 연장했다. 이 중 조국혁신당도 10석 넘는 의석을 얻었다. 국민의힘은 108석을 얻어 개헌 저지선을 가까스로 지켜내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민주당이 잘해서라기보다는 윤석열 정부의 오만과 불통, 국민의힘의 지리멸렬에 실망한 민심의 심판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어쨌든 민주당은 지난 국회에 이어 이번에도 어떤 법안이든 강행 처리할 수 있는 의석을 갖게 됐다. 국회법을 개정해 조국혁신당을 원내교섭단체로 만들고 상임위마다 안건조정위에 투입할 수도 있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른 숙의 절차는 무시하고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도 24시간 만에 강제 종료시킬 수 있다. 한 정당이 8년 연속 입법 권력을 이처럼 완전히 장악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번 선거 결과를 자신들에 대한 국민의 절대적 신임으로 해석하면 앞으로 4년은 지난 4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은 4년 전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뒤 입법권을 독점해 공수처를 만들고 검찰 수사권을 박탈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불법 파업을 조장한다는 노란봉투법, 공영방송을 자기들 편으로 만드는 방송법, 남아도는 쌀을 매년 정부가 사도록 강제하는 양곡법 등,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는 시도조차 하지 않던 법들을 강행처리했다. 그러면서 의원 특권 포기는 거부하고 위성정당 폐기 공약은 뒤집었다. 또다시 국회를 장악하게 된 민주당은 새 국회가 시작되면 정쟁을 유발하는 각종 특검법을 줄줄이 통과시킬 것으로 충분히 예상된다.
사실 이번 선거법에 대한 질타도 쏟아지고 있다. 비례대표 투표에서 나온 무효표가 130만9931표로 전체의 4.4%에 달해 역대 가장 높은 수치다.“무효당이 제4당”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떴다방’식 위성정당의 난립을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이 위성정당은 기존 민주당, 국민의힘 등의 이름을 쓸 수 없어 그와 비슷한 다른 이름을 사용했다. 그러니 유권자들은 현장에서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실제 당황했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난 총선엔 35개 위성 비례정당이 나와 투표용지 길이가 48㎝ 였다. 이번엔 38개 정당이 난립해 51.7㎝ 였다. 1% 이상 득표한 당은 7개뿐이었다. 21개 정당은 득표율이 0.1%에도 미치지 못했다. 상당 부분 어디를 찍어야 할지 몰랐거나, 아무도 찍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로 볼 수 있다. 문제의 선거법은 민주당이 4년 전 21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을 배제한 채 군소 정당들과 강행 처리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군소 정당들의 협조를 얻는 대가로 멀쩡한 선거법을 뜯어고쳐 준연동형을 도입했다. 위성정당 기호를 앞당기기 위한 ‘의원 꿔주기’도 횡행했다. 윤미향, 최강욱, 김의겸, 양이원영, 김홍걸 등 21대 국회에서 각종 논란을 일으킨 의원 상당수가 비례 위성 정당 출신이다.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후보 12명 중 최소 5명이 전과자 또는 피의자·피고인이다. 종북 논란을 빚은 진보당 출신 2명도 위성정당으로 당선됐다. 이로 인해 선거법은 이번 총선이 마지막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당장의 현안은 궁지에 몰린 윤 대통령의 앞날과 직결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총선에서 집권 여당의 대패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이번 총선이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인 만큼 윤 정부를 불신임한 것이고 따라서 윤 대통령 보고 물러가라는 것인가, 아니면 대오각성해서 잘하라는 경고장일까. 윤 대통령이 어떤 진로를 택하든 그의 앞길은 험난하다. 이유는 이렇다. 야당과의 협치(協治)를 말하지만 이재명 대표와 조국 등이 이끄는 야권이 윤 대통령이 잘되도록 협조할 리가 없다. 보수권이 망해야 다음 대선에서 좌파가 집권할 텐데 윤 정부를 도와준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또, 이미 기고만장한 야권 사람들이 윤 대통령 모욕 주기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하다못해 총리·장관 등 인준 과정에서 엄청난 공격이 들어올 것이 뻔하다. 윤 대통령의 국제적 위상의 하락도 걱정된다. 국제사회는 이번 총선으로 그를 사실상 '레임덕 대통령' 취급할 것이다. 그의 발언권은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윤 대통령은 바이패싱 당할 가능성도 있으며, 한국의 안보와 주한 미군 문제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이로인해 윤 대통령의 국정 스타일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그의 경험과 경력에 한계가 있는 만큼 그의 성격과 태도를 바꾸는 것이 그리 쉽고 간단하지 않다. 이번 의대정원 파동에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또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과의 알력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부인의 문제에서 불통의 모습은 아주 잘 드러났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또다시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우리의 국제사회 위상은 참혹하게 짓밟힐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대오각성해서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것이 그나마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오히려 오늘의 패배가 윤 정권을 각성시키고 당내 재정비를 자극해서, 3년 후 대선에서 민주당을 저지하고 정권을 재창출하는 밑거름으로 삼는 것이 지금 보수층의 선택이다. 그런 관점에서 윤 대통령은 2년 전 대권에 도전할 때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그는 아무 연고도 없는 정치권, 그것도 고루하기까지 한 보수 정당의 높은 장벽을 넘어 대통령 후보를 따냈고 집권 여당을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가 그때의 심정과 자세로 돌아간다면 오늘의 역경을 넘지 못할 리 없다. 옛 유생들은 지상(至上)의 자리는 오르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하루빨리 대통령병에서 깨어나 대한민국 지존으로서의 권위를 되찾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그 어느때보다 기울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