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장로교회 김병수 담임목사

    얼마 전에 한국에 있는 처형과 처형의 아들이 2주 동안 저희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20년 전부터 덴버에 있는 저희 가정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는데 그 동안 오지 못하고 이제야 온 것입니다. 그 동안 한국에 있는 장모님을 모시느라고 오지 못했습니다. 작년에 장모님이 소천하시고 나서 미국으로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덴버에 있는 저희 가정도 방문하고 미국도 한번 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저금을 해서 아들과 함께 온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꿈에 그리던 여행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저의 아내는 언니와 조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손꼽아 기다린 방문이었습니다.  저도 오랜 만에 처형과 조카를 만나서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두 사람이 보고 싶다는 곳도 보여 드리고 함께 식사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처형과 조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재미있는 사실도 많이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처형은 아주 조용하고 예쁘고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약 30년의 세월이 처형을 많이 바꾸어 놓았습니다. 처형은 아주 호불호가 분명하고, 용감하고, 의지가 강한 전형적인 한국 아줌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장모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덴버에 있는 저희 집에 와서 몇 달 동안 머물다 가곤 하셨습니다. 장모님은 일찍 남편을 잃고, 혼자서 4남매를 키워 낸 의지가 강한 분이었습니다. 오래도록 고생스러운 시간을 묵묵히 참으면서 4남매를 키운 너무나 고마운 분입니다.

     그런 세월을 보내면서 장모님은 성격도 강하고 말투도 강했습니다. 이번에 처형이 하는 말을 듣고 있는데 마치 장모님이 하는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특정 상황에서 던지는 말이 장모님이 하던 말과 꼭 같았습니다. 저와 아내와 저의 아들이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처형이 오랫동안 어머니를 모시면서 성격도 말투도 다 어머니를 닮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미국에 있는 저희 가정이 하지 못했던 일을 처형이 도맡아 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저의 아내는 더 정성껏 처형과 조카를 대접했습니다. 미국에 있는 몇몇 국립 공원에도 데리고 갔는데 방문할 때마다  “베리 굿”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미국에 왔으니 감탄사도 영어로 했습니다. 처형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마음이 기뻤습니다. 


     그런 처형의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너무나 감사했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미국에 있으면서 장모님을 돌보지 못한 부분을 처형이 도맡아서 해야 했고, 장모님과 함께 한 오랜 세월이 처형을 또 강한 여자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 보면서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환경과 세상과 사람이 우리를 연단하더라도  아름다운 사람으로 변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지식과 성격으로 인해서 생각과 주관이 더 뚜렷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인생의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확고한 주관이 필요합니다. 삶의 근본적인 방향성에 대해서 우리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이리 저리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는 유연한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제한된 지식과 경험을 내세우다 보면 우리는 더 성장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나의 지식과 경험을 내세우고 주장하다 보면 다른 사람과도 우리는 자꾸 부딪히게 됩니다. 우리가 나이 들어가면서 자기 주장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과 입장에도 마음을 열 수 있는, 마음과 생각이 유연하고 열려 있어서 누구와도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는 멋진 사람으로 나이가 들면 좋겠습니다. 


     또 이번에 처형 가족과 시간을 보내면서 늘 가질려고 한 마음은 이들을 잘 섬겨야겠다는 마음 이었습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여행을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성격과 취향이 다 나타납니다. 한번 여행을 하고 나서 다시는 그 사람과 여행하고 싶지 않다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맞춰주는 것은 참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을 잘 섬기겠다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여행을 하니 여러 가지 까다로운 상황들도 잘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뭐든지 내가 원하는대로 안내하지 않고 그 분들에게 맞춰 줄려고 하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아름다운 사람은 자기 주장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섬기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요?


     또 나이가 들어서도 아름답게 보이는 사람은 꿈과 비전이 있는 사람입니다. 구약 성경 잠언 29:18에는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아름다운 사람은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꿈과 비전이 자신의 마음과 언어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 우리에게 들려 준 말 가운데는 좋은 말도 많았지만 인간적인 말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부모님의 말은 없어지지 않고 자녀들의 마음과 언어 속에 그대로 남게 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나의 말 속에 인간적인 말은 삼가하고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귀한 꿈과 비전만 자녀들에게 전달해 주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열려 있고, 사랑과 섬김이 있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언어와 생각 속에 하나님의 꿈과 비전이 가득한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가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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