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면전으로 전쟁을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러시아는 가뿐하게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우크라이나의 반격은 예상외로 거셌다. 그러나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이런 전쟁으로 인해 민간인들의 고충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러시아는 과거 소련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옛 소련의 영역은 자신들의 영역으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옛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회원국들이 미국이 중심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한 것은 물론 소비에트 연방의 구성국이었던 나라들도 나토에 가입하기에 이르자, 러시아는 국경에 붙은 나라들에 대해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2022년 2월 24일 현지시각 5시 50분경, 러시아의 포병대와 미사일 부대가 우크라이나를 향해 전면적인 포격을 시작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17개월이 흘렀다.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이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다. 박정희·노무현 전 대통령이 해외의 우리 파병부대를 방문한 적은 있지만, 파병지가 아닌 해외 전시 지역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그리고 군수 물자와 1억5천만 달러의 인도적 지원, 각종 재건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러시아와 안보·경제적 이해관계를 감안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6·25 참화를 겪은 우리가 우크라이나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자유·민주의 가치를 표방하는 중추 국가로서 책무를 저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70년 전 이보다 더한 경험을 했다. 말 그대로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파괴된 국토를 재건하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러시아의 침략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73년 전 북한의 남침으로 온 국토가 초토화됐던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에는 우크라이나인의 고통을 공감 못 하는 이가 많아 보인다. 국제사회로부터 “우크라이나를 돕자”는 호소가 쏟아지는데도 “국익을 위해 외면하라”는 주장이 유명 정치인의 입에서 나온다. 그러나70년 전 세계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패망을 면한 나라에서 나올 말은 아닌듯 하다. 물론 유럽에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입장은 차이를 드러낸다. 그러나 대다수의 기본 입장은 명쾌하다. 어떤 해석과 의견이 있든 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사실은 달라지지 않으며, 자유와 생명, 주권을 지키려 싸우는 이들을 돕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G7과 나토 국가들 모두가 우크라이나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 재건하기 위한 국제 연대에 동참하고 있다. 이런 판단에는 장황한 논리가 필요없다. 약간의 정의감과 윤리 의식이면 충분하다.


    73년 전 미국을 비롯한 16개국의 젊은이들은 이름도 모르고 낯설고 작은 나라였던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달려와 싸워주었다. 195만명이 참전해 3만8천여명이 전사하고 10만3천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이미 지도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국제사회의 도움이 있었기에 한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경제 10위권의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힘을 보태야할 명분은 충분하다. 


    한국의 전쟁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엄밀히 따지면 여전히 전쟁 국가이다. 다음 주면 6ㆍ25 한국전 정전(停戰) 협정 70주년을 맞는다.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경 북한군이 남침하면서 발발한 한국전쟁은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이 맺어질 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1954년 제네바에서 교전국 정부들이 모여 종전을 논의했으나 결렬되었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현실적으론 전쟁이 끝났지만 법적으론 아닌 셈이다. 정전체제는 전쟁도 평화도 아닌 이상한 상황이다 보니, 원칙적으로 남과 북은 선전포고 없이 언제든지 전쟁을 시작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한국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은 닮은 점이 많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선에 육군 병력의 97%를 투입해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며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 우크라이나도 한뼘의 땅도 내주지 않겠다는 자세로 필사적으로 맞서고 있다. 이는 1950년 한국전쟁에서 서울을 수복하고 압록강까지 나아갔던 한국과 유엔군이 중국군의 참전으로 다시 밀리면서 이후 양쪽이 휴전선 인근에서 고지전을 벌이며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던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다.  


     전쟁을 일으킨 북한 김일성은 1952년 무렵부터 전쟁을 끝내길 원했지만, 소련의 스탈린은 계속 싸우라며 종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스탈린은 유럽에서 미-소간 전쟁도 벌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고, 미국의 군사력을 한반도에서 최대한 소진시켜 소련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후에야 소련의 정책이 바뀌었고, 그해 7월27일 휴전협정이 맺어졌다. 한국전쟁에서 협상의 열쇠를 스탈린이 쥐고 있었다면, 이번에는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요한 열쇠를 들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최대한 힘을 소진하고, 러시아가 중국에 깊이 의존하게 만드는 것을 전략적 목표로 삼고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지금은 결사항전을 하고 있지만 경제규모 9배의 핵강국 러시아에게 군사적으로 완승을 거두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국전쟁처럼 우크라이나 땅은 분단된 채 휴전 또는 종전으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결국 미·중·러 강대국 간의 거래와 타협이 전쟁의 최종 결정권을 가지게 된다. 여기서 적어도 강대국의 일방주의가 관철되지 않고 우크라이나인들의 주권이 최대한 존중받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데 한국도 동참하길 바란다.


      한국전쟁 정전 70년을 맞아, 한국에서 한강의 기적이 일어났듯이 우크라이나에서도 드니프로 강의 기적이 일어나길, 그리고 전세계의 전쟁 국가들이 속히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체제가 구축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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